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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빠진 'EDM 전설'…"피아노는 내 창작 과정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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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빠진 'EDM 전설'…"피아노는 내 창작 과정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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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DJ 겸 작곡가인 아르민 판 뷔런(49). 그는 전자음악 장르인 ‘트랜스의 제왕’으로 불린다. 연간 DJ 인기 투표 ‘DJ MAG 톱100’에서 다섯 차례 1위에 올랐다.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과 팝 보컬을 결합한 데이비드 게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을 책임졌던 마틴 개릭스와 함께 역대 최다 기록이다. 그는 청취자 4400만여 명의 라디오 프로그램 ‘스테이트 오브 트랜스’ 진행자이기도 하다.

    뷔런은 지난 11월 새 음반을 발표했다. 앨범명은 ‘피아노’. 그 안엔 강렬한 리듬도, 고막을 때리는 전자음도 없다. 대신 그가 작곡한 피아노 작품 15곡이 담겨 있었다. EDM 차트에서 가장 많이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정점을 찍은 DJ가 왜 갑자기 클래식 음악에 빠졌을까. 이메일로 진행한 아르떼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많은 EDM 멜로디가 피아노에서 시작된다”며 “피아노는 창작 과정의 영혼과 같다”고 했다.
    DJ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피아노
    뷔런이 클래식 음악계와 연이 없던 건 아니다. 그는 2013년 네덜란드 국왕 즉위를 기념해 열린 무대에서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네덜란드 왕가와 악단 단원이 관객들과 함께 그의 비트에 몸을 맡겼다. 뷔런은 여덟 살에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피아노 선생님에게서 나는 ‘책 냄새’가 싫어 금세 그만뒀다. “지금도 후회하는 결정”이라고. 그래도 당시 배운 화음 지식이 초기 히트곡을 만들 때 도움이 됐다. 첫 집을 장만했을 땐 스타인웨이 피아노도 샀다.


    그는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뷔런은 네덜란드 왕실에 제왕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한 레이던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도기식 바비큐 조리법, 보트 운전을 배우고 헬스 매거진 ‘맨즈헬스’의 표지 모델도 하면서 새로움을 찾았다. 피아노는 2016년부터 다시 쳤다. 쇼팽과 사티를 연주하며 악보 읽는 법을 배웠다. 동생의 소개로 피아니스트 제르니모 스네이츠호이벨을 만난 건 5년 전이다. 클래식과 재즈에 모두 능한 그는 뷔런의 음악적 상상력을 채워주는 선생이 됐다.

    “스네이츠호이벨은 매주 두 시간씩 운전해서 저를 가르치러 왔어요. 그런데 전 매주 연습하진 않았죠. 그가 도착하기 전 급하게 아이디어를 만들곤 했는데 다행히 제 스케치를 좋아해 주더라고요. 레슨으로 시작해 함께 쓴 곡이 15곡이 됐어요. 전 스타인웨이 근처에 항상 작은 녹음기를 두고 즉석에서 간략한 아이디어들을 녹음했어요. 나중에 그걸 악보로 만들었죠.”


    피아노는 스튜디오에 갇혀 살아야 했던 그에게 탈출구가 됐다. “전자음악을 쓰려고 스튜디오에 앉으면 지난 주말 페스티벌 세트의 유령이 방 안에 있는 것 같아요. 또 다른 ‘빅 트랙’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구속처럼 느껴지곤 하죠. 댄스음악은 BPM(분당 비트), 에너지, 구조 등에 맞춰야 하잖아요. 하지만 피아노 앞에선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단지 손가락, 건반, 그리고 이것들에서 나오는 것만 있을 뿐.”
    교회에서 연주하자, 소리가 살아났다
    뷔런은 비밀리에 피아노 앨범 녹음을 준비해 왔다. 프로듀싱과 DJ 공연 일정 사이에 호텔 방에서 피아노를 빌려 연습하길 반복했다. 공연 전후인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도 건반 앞에서 녹음 리허설을 계속했다.

    지난 3월 뷔런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있는 오래된 교회에서 이번 앨범을 원 테이크로 녹음했다. 네덜란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리사 야곱스와 첼리스트, 호르니스트 등이 함께했다. “제 작곡이 실제 악기로 살아나는 과정을 듣는 경험은 압도적이었어요.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을 땐 솔직히 눈물을 참아야 했어요. 소리를 상상하거나 컴퓨터에서 디지털로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곤 했는데, 갑자기 이 소리들이 살아난 거죠. 어떤 플러그인도 복제할 수 없는 따뜻함과 깊이가 녹음 공간을 채웠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 세팅으로 시작된 녹음은 늦은 밤에야 끝났다. 연주자들은 새로운 뉘앙스를 더했다. 그는 ‘음악은 살아있는 것이요. 음악을 통제하지 않고 타인과 나눌 때 비로소 음악가가 성장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녹음 직전 함께 나눈 침묵의 순간들엔 신성한 무언가가 있었어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악기는 언제나 인간의 호흡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줬어요.”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 녹음한 곡인 ‘파더 앤 손스’는 뷔런이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롱잉(Longing)’ ‘이쿼니머티(Equanimity)’ 같은 곡은 추상적이고 순수한 감정을 구현하죠. ‘소닉 삼바(Sonic Samba)’는 유쾌한 제목인데 리듬, 색채, 움직임으로 차 있는 작품이에요. ‘비 마이 라이트하우스(Be My Lighthouse)’는 제 인생의 보금자리이자 길잡이였던 아내에게 바치는 헌정곡입니다.”
    트랜스에 숨은 바흐 찾기
    뷔런의 EDM에는 클래식이 숨어 있다. 그는 쇼팽을 좋아한다. 그가 듣는 쇼팽의 음악엔 연약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적 깊이가 있다.


    어릴 적 뷔런의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마다 말러 교향곡을 틀었다. “(말러가 만든) 광대한 감정의 풍경은 비극적이면서도 때론 고요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는 쇼스타코비치로 음악을 바꾸곤 했는데 이렇게 이어지는 긴장감과 아이러니는 어린 시절의 저를 매혹했어요. 이 음악들은 구조 안에 숨겨진 감정이 뭔지, 대비가 뭔지를 가르쳐줬죠. 클래식 음악의 요소를 전자음악에 섞겠다는 열정이 시작된 때였어요.”

    그의 작품 어디에 클래식 음악의 흔적이 담겼을까. “제 마지막 (EDM) 앨범에 담긴 ‘바흐 투 더 퓨처’는 바흐의 대위법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어요. 멜로디들이 복잡하게 얽혀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균형감과 역동성을 트랜스의 맥락으로 풀어냈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느슨하게 영감을 받은 트랙도 있어요.”


    소리를 층층이 쌓아 올리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빌드업과 이를 해소하는 이완 과정은 트랜스 음악의 핵심. 이 과정 자체가 뷔런에겐 ‘교향곡적’으로 보인다고. 그러면서 뷔런은 피아노의 매력을 거듭 강조했다.

    “전 기타 레슨을 받지 않았는데 아마도 피아노 그 자체가 완전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피아노를 연주할 땐 멜로디, 하모니, 리듬, 모든 게 손가락 아래에 펼쳐져 있어요. 이때의 연주는 건물을 설계하며 청사진을 보는 것과 비슷해요. 실용적인 면에서도 피아노는 접근성이 엄청나죠. MIDI 키보드는 저렴하고 가벼울뿐더러 그냥 꽂고 연주하면 돼요. 전자음악에서 이 즉각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건반은) 촉각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인 셈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무언가도 있어요. 속삭일 수도, 천둥 치듯 울릴 수도, 내밀하거나 웅장할 수도 있어요. 연약하거나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해요.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입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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