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의 부모와 배우자, 두 딸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가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원고법 형사2-1부(김민기 김종우 박광서 고법판사)는 24일 존속살해 및 살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이모씨의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 직권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하되 원심과 동일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1심 판결 선고 후 피고인의 업무상 배임죄 등 사건 판결이 확정돼 후단 경합범 관계에 있어 원심은 파기돼야 한다"며 파기 사유를 밝혔다.
양형에 대해서는 "가족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두 딸과 배우자가 저항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비통한 범행"이라고 판시했다.
이씨는 지난 4월 14일 밤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 자택에서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20대 두 딸 등 일가족 5명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이들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범행 후 "모두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메모를 남기고 이튿날 새벽 달아났다가 같은 날 오전 사업차 머무는 광주광역시 오피스텔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수사 당국의 조사 결과, 주택건설업체 대표였던 이씨는 광주광역시 일대 민간아파트 신축 및 분양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면서 수십억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게 되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 공판에서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수십억원의 빚을 지고 힘들게 살게 될 생각에 범행했다는 동기는 납득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면서 "생계를 책임져 온 가장이라고 해도 감히 그럴 수는 없다"고 이씨를 꾸짖었다.
또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소중한 공동체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가족은 서로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엄혹한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라면서 "피고인의 범행은 한 가정을 파괴한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킨 보편적 가치를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범행은 과연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저는) 이 질문에 답하기가 몹시 두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사형 선고 여부를 설명하면서 2004년 이후 사형이 확정된 15개 사건의 주요 양형 요소를 분석, 제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사형 선고 사건들이 주로 강도강간 등 중대범죄, 살인죄가 결합돼 있거나 방화, 흉기 사용 등 범행 수법이 잔혹한 사건들로 이 사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면서 "올해 이 사건과 유사하게 경제적 어려움에 자녀 2명을 살해하고 배우자의 자살을 방조한 사건은 무기징역이 확정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해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을 엄중한 형으로 처벌할 사정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누구라도 수긍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생명을 박탈하는 것보다 사형 이외 형벌로서 중한 형을 선고함으로써 영구히 사회에 격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어준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속죄하라"고 말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