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콜리 와인을 아시나요?” 지난 12월 9일 와인 행사에 함께 참석한 지인이 불쑥 던진 질문이다. “그동안 마셨던 와인과는 전혀 다른 맛과 향을 발견했어요”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페인 와인을 수입하는 한 참가업체의 시음 부스에 들렀을 때 일이다.
이름도 생소한 ‘차콜리(txakoli)’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생산되는 전통 와인을 말한다. 서늘하고 습한 기후를 좋아하는 토착 포도 품종인 온다라비 수리(Hondarrabi zuri) 등으로 양조한다. 대부분 화이트 와인이며 수백 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국내 수입물량이 극소량인 이 와인은 산도가 높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것이 특징. 가벼운 탄산 기포가 포함돼 깔끔하고 산뜻한 맛을 낸다. 와인 병을 높이 들어 따르면 기포가 더 많이 발생하는데 국내 한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그와 함께 레몬이나 청사과 등 과일향은 물론 미네랄리티도 강해 굴이나 새우 등 신선한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실제 이 와인은 빌바오(Bilbao)를 비롯해 대서양 쪽 항구 주변에서 많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차콜리 와인 중심에는 바스크 지방 대표 와이너리인 ‘보데가 아스토비사(Bodega Astobiza)’가 있다. 지난 12월 16일 와인메이커 겸 수출 총괄 매니저인 알바로 아리츠 부한다(Alvaro Aritz Bujanda)가 한국을 찾았다. 운 좋게도 그를 만나 차콜리 와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알바로는 “아스토비자에서는 그동안 차콜리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전통 방식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양조기술을 결합해 최고 품질의 차콜리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차콜리 와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는 아스토비자 와인의 최대 경쟁력으로 ▲순수하고 깔끔한 친환경 와인 ▲늦수확과 장기숙성을 통한 정교한 농축미 ▲강렬한 미네랄리티 등 3가지를 꼽았다.
그 외에도 넓은 포도나무 식재 간격 유지나 젖산 발효를 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바싹한 풍미 묘사, 세계 최초로 차콜리 로제와인 생산 등 알바로는 물론 국내 공식 수입사(카보드) 대표인 마티아스 코헨 아크닌의 차콜리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선보인 와인은 모두 5가지. 시음 행사는 알바로가 직접 진행했으며 통역을 맡은 마티아스 대표가 더 많은 설명을 덧붙이며 측면 지원했다. 그중 대표적인 와인 3종류의 맛과 향을 소개한다.
가장 먼저 나온 ‘아스토비자 블랑코’의 첫인상은 매우 독특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국제품종인 샤도네이와 소비뇽 블랑 그리고 리즐링이 모두 합쳐진 맛과 향이다. 그럼에도 3개 품종이 각각 독립된 퍼포먼스를 나타냈다.
양조에는 온다라비 주리 포도 품종을 100% 사용했다. 특히 저온 침용과 스테인리스 탱크 발효를 통해 과일향과 신선한 산미를 유지했다는 것이 알바로의 설명이다. 알코올 도수는 9%.
다음으로 마신 와인은 ‘아스토비자 로사도’. 옅은 분홍 컬러가 오전 시간대 낯설고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이 덕분에 마음이 다소나마 편해졌다. 포도는 온다라비 주리와 온다라비 벨차(beltza)를 절반씩 사용해 양조했다. 딸기와 장미향이 나타난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쉽게 잡히지는 않았다.
끝으로 아스토비자 대표 선수나 다름없는 ‘말코아’가 나왔다. 프리미엄급인 이 와인 역시 온다라비 수리 100%로 만들었다. 슬쩍 마셨는데도 강한 미네랄리티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7~8개월의 별도 숙성과정을 거쳐 복합적인 향과 구조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마티아스의 설명이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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