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일부 대도시에서 임대료가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 고급 아파트 공급이 급증하면서 고소득 임차인들이 새 아파트로 이동했고, 이 여파로 기존 아파트 임대료까지 끌어내린 결과다.
블룸버그는 23일(현지시간) 부동산 리서치업체 코스타 자료를 활용해 미국 평균 임대료가 11월 기준 전월 대비 0.18% 하락했다고 전했다. 이는 15년여 만에 가장 큰 월간 하락폭이다. 임대료 하락은 오스틴, 덴버, 피닉스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플로리다 네이플스와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비치 등 휴양지에서도 가격 조정이 이어졌다.
임대료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신규 고급 아파트 공급이다. 최근 수년간 고급 주거 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여유 자금을 가진 임차인들이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이동했고, 공실을 피하려는 기존 아파트 집주인들이 임대료를 낮추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오래된 일반 시장형 아파트의 임대료는 최대 11%까지 떨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임대료 규제와 보조금이 적용되는 ‘공공 임대 주택’보다 더 저렴해졌다.
블룸버그는 ‘고급 주택 공급은 전체 주거비 부담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통념을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신규 아파트 공급이 많았던 도시는 임대료가 크게 하락한 반면, 공급이 제한적이었던 도시는 임대료 변동이 거의 없었다.
전국다세대주택협회(NMHC)의 샤론 윌슨 제노 회장은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며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임대료는 내려간다”고 말했다.
이번 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형성된 주택 시장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팬데믹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와 원격근무 확산으로 대도시 근로자들이 선벨트 지역으로 이동하자, 개발업체들은 오스틴과 피닉스, 덴버 등지에서 대규모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24년을 전후로 이들 도시에서 고급 아파트 공급이 정점을 찍었다.
다만 이런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임대료 하락 폭이 컸던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업체들이 신규 프로젝트 계획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임대용 신규 아파트 공급량은 2024년 중반 정점을 찍은 뒤 내년에는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6만 가구의 주택을 보유한 캠든 프로퍼티 트러스트 역시 신규 공급 증가를 임대료 인하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했다. 리크 캄포 회장은 지난 11월 투자자 콘퍼런스콜에서 “임대료 인상보다 점유율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공급이 다시 타이트해지면 임대료는 다시 오를 것”이라며 “현재는 아파트와 관련 주식이 일시적으로 할인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