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석화 기업들은 선제적 감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먼저 생산량을 줄이는 기업이 더 큰 손실을 본다고 판단해서다. 주요 기업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 설비감축에 동의하게 한 것만으로 상당한 진전이다. 대기업 CEO 출신으로 기업의 생리를 잘 아는 김 장관의 진정성 있는 호소가 먹혀든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글로벌 석화 시장은 공급과잉 상태다. 규모의 경제를 이룬 중국에 이어 화학제품의 원료인 원유가 공짜나 다름없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같은 범용 제품 시장에선 국내 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구조다. 그렇다고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석화 제품 연간 수출액은 400억달러(약 59조원)가 넘고, 관련 산업 종사자도 15만 명 안팎에 이른다. 설비감축 합의는 응급수술일 뿐이다. 석화산업이 되살아나려면 생산시설 통폐합과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의 전환 등이 뒤따라야 한다.
관건은 속도다. 정부는 사업 재편에 참여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개발(R&D) 지원, 규제 완화, 세제 감면 등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회사들도 대출 등 지원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런 과정과 절차가 빠르게 이뤄져야 기업에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구조 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용 감소 문제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적어도 정부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고용 경직성을 키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김 장관은 “이 정도면 됐다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 구조 개편은 속도를 잃고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고 했다. 기업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