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상속인 없는 유산(상속인 부존재 재산)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은 한가지 원인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인 초고령사회라는 인구구조와 단절된 가족관계의 심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부모가 남겨준 상속재산이 현금화하기가 어려워서 또는 관리가 어려워 차라리 받지 않겠다는 상속포기나 상속과 관련된 제도적 한계가 겹친 결과 등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법적으로는 가족이지만 수십 년간 연락 없는 형제관계가 늘면서 형제의 생사와 거처를 알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 노년에 이르게 되면 사망한 형제의 상속 절차에 관심이 없거나 치매 등으로 인해 상속 절차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일본, 통장 하나 찾기도 어렵다
일본은 65세 이상이 전 인구의 30%를 넘어섰고 75세 이상의 후기고령자 인구수가 65~74세까지의 전기고령자 인구보다 많은 상태다. 후기고령자 중 독거 고령자의 증가와 단절된 인간관계는 자연스레 무연고 고령자를 양산하고 있다. 가족과 사회와 단절된 독거 고령자들의 고독사는 상속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상속재산의 귀속 문제를 지연시키는 원인이 된다.
일본은 제도적으로 상속재산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회다. 한국은 안심상속원스톱서비스를 통해 고인의 거의 모든 상속재산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곧바로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이런 시스템이 없다. 하나의 번호로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전국에 있는 금융재산을 비롯한 상속재산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유품 정리가 매우 중요하다. 고인의 물건을 잘 살펴보고 의미 있는 물건들은 자손들에게 소중하게 넘겨준다는 준엄한 분위기의 유품 정리는 상속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다른 모습이 된다. 부모가 거래하던 통장과 상속재산을 찾는 것인 셈이다.
그렇게 발견한 통장을 들고 금융기관을 방문해 상속재산을 파악하게 된다. 만약 통장도 없고 금융 거래 흔적이 없는데 다른 지역에 있는 금융기관을 거래하고 있다면 그 재산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제도적 허점은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도쿄에 살지만 오사카, 나고야 등의 지역에서 금융 거래를 하고 특정 상속인에게만 알려주는 악용 사례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일종의 주민번호 제도와 같은 ‘마이넘버 제도’를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처럼 생년월일, 지역, 성별을 구분하는 기준 없이 무작위로 번호가 부여돼 신분증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마이넘버 제도는 사회보장이나 세금에 활용되는 등 그 범위가 제한적이고 상속재산 파악에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 전체적인 상속재산 파악이 어려운 환경은 결국 상속재산의 처리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환원 위한 유산 기부 증가
일본 민법의 상속 순위도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 일본의 법정상속 제1순위는 배우자와 직계비속, 제2순위는 배우자와 직계존속, 제3순위는 배우자와 형제자매다. 우리나라와 같이 4순위(4촌 이내의 방계혈족) 상속인은 없다. 무자녀·고령·1인 가구 사회인 일본에서 형제자매가 상속인이 되는 사례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서로 단절된 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가족 구조에서 상속인을 쉽게 찾지 못하는 무연고 상속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기부율이 높지 않은 나라로 평가된다. 영국계 자선 지원재단 CAF가 전 세계 성인을 대상으로 매년 기부 지수를 측정하는데 일본은 2024년 142개국 중 141위, 2023년에는 139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기부 수치는 지난 한 달 동안 낯선 사람을 도운 경험, 기부 경험, 자원봉사에 참여한 경험 세 가지를 합산해 발표하는데 일본의 전통적인 기부 개념과 상충되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본식 기부의 특징은 익명성을 강조하고 개인의 직접적 기부보다는 조직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봉사가 몸에 밴 탓에 남을 위한 선행을 기부로 생각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인식 때문에 아마도 기부 수치로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인의 전형적 인식은 복지는 국가가 할 일이고 나는 이미 국가에 세금을 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각종 사회보험료 부담도 기부의 여력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일본인들도 준비 없는 사망이 증가하면서 특히 1인 가구의 경우 3순위의 형제자매들에게 상속되는 것보다는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사후 기부에 관심이 증가하게 됐다. 결국 고령화와 사망자의 증가에 따른 상속의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겨줄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사회에 환원하는 유산 기부 참여가 늘게 됐다.
우리도 2045년 세계 최고령
우리는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45년이 되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고령 국가로 등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늘어난 인생이 희망보다 불안을 주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건강한 노후와 보람 있는 100년 삶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까.
저출산·고령화, 인구 감소, 그리고 고령자 40%라는 사회가 도래될 것은 확실시된다. 사회지속성의 붕괴 우려와 사회보장 재정 압박과 동시에 개인들의 고립과 의료, 돌봄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중 35%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70대 이상의 1인 가구가 19.8%로 20대 비율보다 높아졌다. 배우자 사망 후 독립적인 고령층이 늘지만 자녀세대와는 함께 살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표는 상속의 관점에서도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첫째, 고령층 1인 가구의 경우 미리 자신의 재산에 대한 상속의 뜻을 분명히 남겨야 한다. 자녀가 없는 고령의 1인 가구의 경우 아무런 준비 없이 사망하면 형제자매가 상속인이 된다. 형제자매도 없는 독신이라면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4순위 상속인, 즉 4촌 이내의 방계혈족에게 상속이 이뤄진다.
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형제자매의 유류분도 없어진 상황에서 과연 자신의 재산이 상속되길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형제자매가 먼저 사망할 경우 조카를 비롯한 수많은 대습상속인들이 등장할 것이고 고인의 재산은 참으로 의미 없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재산이 없는 고인의 모습은 더욱 서글퍼진다. 2024년 8월 기준 우리나라도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연고자가 있어도 ‘인수 거부·회피’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19.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고립된 ‘쓸쓸한 죽음’이라는 사회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공영장례 지원 제도가 있지만 좀 더 치밀한 생애 주기별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일본은 2024년 고령사회 대응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노쇠하고 혼자가 돼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한다는 ‘지역공생사회’를 설정하고 있어 우리도 그 지혜를 찾을 수 있다.
기부신탁 도입 서둘러야
둘째, 1인 가구의 경우 노후의 경제적 기반을 보강하며 동시에 기부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고령의 1인 가구는 상속 플랜 설계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기부를 계획하거나 실천하려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생전 기부는 길어진 노년의 삶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어 기부를 주저하게 만든다.

기부자의 기부 니즈를 충족하고 실천하기 위한 방법과 구조를 제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신탁을 활용한 방안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신탁된 자산이 사후에 기부되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생활비로 사용할 수도 있고 남은 자산은 자신이 생전에 지정한 기부단체로 이전되는 구조다.
1인 가구의 기부의 뜻을 실현시켜주기 위해서는 좀 더 실효성 있는 신탁형 기부플랜이 필요하다. 바로 CRT(Charitable Remainder Trust) 제도다. 이는 영미에서는 보편적인 기부신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부자가 신탁을 설정할 때부터 기부가 이루어진 것과 같은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세제 혜택이 주어진 만큼 신탁은 취소할 수 없지만 기부자는 신탁에서 정기적으로 일정한 연금을 받을 수 있고 신탁된 자산은 비과세로 운용된다. 위탁자의 사후에는 비과세로 운용된 자산은 위탁자가 생전에 지정한 공익법인으로 기부가 이루어진다. 노후에 생활도 보장되고 기부의 뜻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고령층 1인 가구는 자신이 원하는 상속 플랜을 더 멋지게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배정식 법무법인 화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