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4~5번 씩은 닭고기 양 때문에 항의하는 고객을 맞닥뜨립니다. 그 상황을 막상 겪으면 장사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진이 빠져요. 중량 표시를 제도화하면 민원은 더 늘텐데 개인 자영업자들이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서울 용산구 한 프랜차이즈 치킨매장 점주 이모 씨)
치킨을 판매할 때 조리 전 닭고기 무게를 소비자에게 알려야 하는 '치킨 중량표시제'를 두고 치킨 매장 업주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량 표기가 원재료를 기준으로 하는 만큼 조리 후엔 무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 중량이 조금이라도 적으면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가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날개, 다리 등 특정 부위만 사용하는 부분육 메뉴는 중량 표시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조리 후엔 중량 줄어드는데…별점 테러 우려도
17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식품 분야 용량꼼수 대응 방안'이 지난 15일부터 시행됐다. bhc, BBQ치킨, 교촌치킨, 처갓집양념치킨 등 시행 대상이 된 상위 10개 브랜드는 매장 및 배달 주문 메뉴판에 닭고기의 조리 전 총중량을 표기하게 된다. 그램(g)으로 표시하는 게 원칙이며, 한 마리로 조리 시 가령 '10호(951~1050g)'처럼 호 단위로도 표기할 수 있다. 10호는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가 뼈 있는 한 마리 메뉴를 조리할 때 주로 쓰는 크기다.중량표시제는 당초 과자,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에 적용하던 제도다. 정부는 교촌치킨이 가격은 유지하면서 일부 메뉴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도마에 오르자 중량표시제 범위를 치킨으로 넓혔다.
도입 이튿날 현장을 둘러보니 제도 안착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내년 6월까지 계도기간을 활용해 단계적으로 표기를 확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선 자사 애플리케이션(앱)에 중량 표시를 적용한 뒤 실물 메뉴판 교체, 배달앱 반영 등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기존에 중량 등 기본 정보를 홈페이지에 표시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제도가 빠르게 시행이 돼서 메뉴판, 앱 등 메뉴 표기 교체 작업 관련해 비용을 투입해서 진행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적용이 완료되는 시기는 내년 1분기쯤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직 본격 제도 시행은 되기 전이지만 벌써부터 치킨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다양한 우려가 나왔다. 실질적으로 소비자를 마주하는 점주가 소비자 민원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중량 표기는 '조리 전 원재료'를 기준으로 하는 만큼 조리 후 결과물이 표기 중량과 달라지는 건 불가피하다. 생닭은 손질·해동·조리 과정에서 수분 변동이 큰 데다 개체별 편차도 있어 원재료 무게를 일정하게 맞추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3년차 대형 치킨 브랜드 가맹점주는 “기름에 굽는 방식 제품은 같은 중량이라도 닭의 비계 비중에 따라 조리 후 보이는 양이 달라질 수 있다”며 “비계가 많은 닭은 조리 과정에서 기름이 빠지면서 비계 부분이 쪼그라들기 때문에 정해진 중량의 닭을 사용했어도 소비자 입장에선 양이 적어 보일 수 있다. 이런 조리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중량 표시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니 난감하다”고 푸념했다.
중량표시제가 슈링크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과 다르게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주문 메뉴가 당초 고지한 중량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할 경우 배달 앱에서 매장에 타격을 주는 '별점 테러' 등이 잦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50대 치킨 브랜드 점주는 “점주는 본사나 납품업체가 공급한 원재료를 그대로 받아 조리하는 것이라 중량을 통제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실제 무게 차이에 대한 민원은 개인 자영업자들이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량을 빌미로 삼아 과도하게 항의하거나 낮은 별점으로 영업에 지장을 주는 행위에도 날개를 달아줄 수 있지 않을까”라면서 “점주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도 중량에 대한 걱정과 불만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옆집은 규제 적용 안받던데…볼멘소리도"
업계는 제도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현실을 더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체 매출의 30~40%를 차지하는 부분육 메뉴는 g으로 표기하는 중량표시제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한 마리 단위 제품은 육계 호수 기준이 명확해 표기에 큰 문제가 없지만 다리나 날개 등 조각 단위로 판매되는 부분육은 개수를 맞추다 보면 중량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치킨 각 조각마다 무게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브랜드별 표기방식은 통일되지 않은 상태다. 조리 개수로 표기하거나 중량 범위를 표시하는 등 기준이 제각각이다. 점주들은 조리 전 부분육 제품의 정량을 맞추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에 BBQ치킨, 교촌치킨, bhc치킨 등 대형 치킨프랜차이즈는 홈페이지에 가격과 함께 중량을 표시하고 있지만, 부분육 제품은 대부분 중량 표기를 하지 않았다. 정부는 업계와 중량표시제 세부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상위 10개를 제외한 치킨 프랜차이즈는 중량표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족발·피자 등 다른 외식 메뉴도 제도 적용을 받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량표시제 적용을 받는 한 프랜차이즈 매장 점주는 “인근에 중량 표시를 안 해도 되는 브랜드나 개인 치킨집이 있는데 우리 매장 못지 않게 장사가 잘 된다”면서 “우리 매장만 규제를 받는 셈인데, 결국 다 같은 개인 자영업자 아니냐. 프랜차이즈가 아닌 치킨집은 중량 꼼수를 부릴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반발했다.
한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도 “푸라닭, 깐부, 노랑통닭 등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브랜드 중에서도 영세하지 않은 브랜드가 많다. 반대로 주요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지역이나 상권에 따라 영세한 자영업자도 많다”며 “이런 세심한 고려 없이 딱 잘라 10대 브랜드에만 규제를 적용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