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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인가 데이터인가…블록체인이 바꾼 예측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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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인가 데이터인가…블록체인이 바꾼 예측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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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자산 따라잡기]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은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1980년대 미국 아이오와대가 대선 결과를 맞히기 위해 만든 아이오와 일렉트로닉 마켓(IEM)부터, 2000년대 초반 정치·경제 이벤트를 다뤘던 인트레이드, 최근의 프리딕잇에 이르기까지, 미래 사건에 돈을 거는 시장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다만 규모가 작고, 규제가 불분명하며, 학술적 실험이나 마니아들의 틈새시장으로 소비됐을 뿐이다. 반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탄생한 폴리마켓(Polymarket)은 지난 미국 대선에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며, 예측 시장 플랫폼이 많은 투자자를 비롯한 주류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규제의 회색지대인 예측 시장



    과거 예측 시장이 주목 받지 못했던 이유는 규제 및 인프라가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트레이드나 프리딕잇 같은 서비스들은 정치·경제 이벤트에 베팅한다는 점에서, 미국에서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관점에서 파생상품으로, 주 정부 관점에서는 도박으로 동시에 읽혔다. 학술 목적이라는 이유로 예외적 허용을 받기도 했지만, 이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였다.

    실제로 프리딕잇은 소액·학술용이라는 조건으로 버티다가, 결국 CFTC의 기존 입장 철회로 존속 자체가 흔들렸다. 쉽게 말해, 과거 예측 시장은 규제가 잠시 눈감아준 회색지대에서만 존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프라도 문제였다. 예측 시장의 핵심은 가능한 많은 참여자가 다양한 정보를 들고 들어와 가격을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러나 국경, 통화, 결제망 등 여러 요소가 이 시장을 잘게 쪼갰다. 미국인만 참여 가능한 시장, 특정 국가에서는 아예 불법인 시장,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는 국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구조였다. 글로벌 유동성이 한데 모이지 못하니 가격은 얇고, 정보 집약적인 시그널로서의 힘도 약했다.

    이런 가운데, 블록체인 또는 온체인 기반 플랫폼이 등장하며 흥미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주목할 지점은 단순히 규제의 빈틈을 파고들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규제가 전제로 삼고 있던 몇 가지 가정이 기술적으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무너진 가정은 국경이다. 전통 규제는 기본적으로 국가 단위로 작동한다. 누구를 고객으로 받아야 하는지, 어떤 상품을 팔 수 있는지, 어느 나라 사람에게는 불법인지 등을 국적과 거주지 기준으로 나눈다.

    하지만 온체인 기반 서비스에서는 이용자가 개인지갑만 있으면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한곳에 모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식재산권(IP)을 막으면 가상사설망(VPN)이 있고, 은행 계좌를 막자니 아예 은행을 거치지 않는다. 규제당국이 ‘금지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실제로 시장 접근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온체인 플랫폼이 새로운 전환점 만들다

    또한 전통 금융 규제는 일반적으로 ‘누가’ 고객 자산을 보관하고 거래를 중개하는가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 인가 대상도, 책임 소재도, 감독의 범위도 명확하다. 그런데 예측 시장이 온체인 스마트컨트랙트 위에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포지션 발행, 유동성 공급, 가격 형성, 정산까지 모두 코드가 처리하고, 자산은 온체인에 묶여 있다. 이 구조에서는 특정 주체를 운영자로 특정하고 규제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예측 시장은 은행 계좌와 카드 결제망을 우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치금 관리, 인출, 정산, 고객 확인 같은 절차가 서비스 설계의 출발점이었다. 반면 온체인 예측 시장의 근간에는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이 있다. 예측 시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포지션 진입 및 청산, 증거금 예치, 수익 실현이 모두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곧, 예측 시장이 기존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글로벌 단일 통화로 작동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적·제도적 변화 위에서 포지션의 토큰화가 힘을 갖기 시작했다. 폴리마켓의 예·아니오 토큰을 금융공학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옵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벤트가 발생하면 1달러로 정산되고, 발생하지 않으면 0달러가 되는 구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다. 기존 예측 시장 서비스가 베팅 이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구조였다면, 온체인 예측 시장에서는 중간에 포지션을 사고팔며 확률 변화 자체를 트레이딩하는 시장을 구현해냈다.

    한편, 온체인 예측 시장은 외형적으로 옵션으로 볼 수 있지만, 작동하는 맥락은 정보 시장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전통 서베이 기반의 정치·사회 분석이 신뢰를 잃어 가면서, 이 시장의 존재감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 대선과 주요 정책 이슈에서 여론조사는 반복적으로 빗나갔고, 응답률 저하와 샘플 편향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도박에서 유용한 데이터 소스로

    반면 예측 시장에서는 참여자들의 금전적 손익을 담보로 특정 사건의 결과에 대한 확률을 보여준다. 폴리마켓이 2024년 미국 대선 국면에서 후보 교체 가능성을 여론조사보다 빠르게 가격에 반영했고, 이 가격이 실제로 캠프 전략과 언론 서사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의견, 모델링이 제 역할을 못하는 순간, 사람들은 어디에 돈이 걸려 있는가를 새로운 신뢰 지표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예측 시장이 항상 집단지성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폴리마켓에서 특정 후보에게 수천만 달러 규모의 베팅이 몰리며 가격을 끌어올린 ‘고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형 자본이 시장 가격을 왜곡하거나, 적어도 왜곡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등장했다. 누군가는 이를 정보 우위가 있는 참여자의 정당한 베팅이라고 해석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 가격이 여론과 언론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자본력이 곧 정치적 발언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예측 시장은 단지 확률을 계산하는 도구를 넘어,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신호 시스템이 돼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자본이 예측 시장에 주목하는 것은 이 시장이 실질적인 정보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와 거시 트레이더 입장에서 정책 발표, 전쟁, 선거, 규제 변화의 확률을 실시간 가격으로 읽을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포지션 관리에 유용한 데이터 소스가 된다. 또 하나는 이 시장의 최종 형태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직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다.

    칼시(Kalshi)처럼 CFTC 인가를 받은 이벤트 파생상품 거래소는 예측 시장이 제도권 파생상품 시장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이고, 폴리마켓은 온체인 인프라가 정치, 여론, 자본이 얽힌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로 성장할 수 있다. 규제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초기 참여자에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최근 예측 시장의 부상은 이 시장이 그저 회색지대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규제와 기술, 금융의 경계가 아직 그어지지 않은 시장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온체인 기반 예측 시장은 그 경계의 바깥쪽에서 먼저 실험을 시작했고, 스테이블코인은 그 실험의 기반이 되는 결제·정산 인프라를 제공했다. 여론조사가 신뢰를 잃어 가는 사이, 예측 시장은 미래에 대한 확률을 가격이라는 형태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해소돼야 할 여러 논란 지점이 남아 있지만 새로운 정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예측 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태우 스페이스바 벤처스 대표 tw@spaceb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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