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1일. 벅셔해서웨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CEO 승계’를 단행했다. 그레그 에이블(63)이 워런 버핏(96)에 이어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했다. 벅셔해서웨이를 넘어 미국 자본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워런 버핏’이 공식적으로 퇴임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미국 월가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그의 아들 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한 것 같이 보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에 앞서 벅셔해서웨이는 지난해 12월 15일 대규모 인사 이동을 발표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토드 콤스의 JP모건 이직이지만, 실제로는 벅셔의 전설적인 '탈중앙화 경영' 모델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시그널이었다.
토드 콤스의 이탈, 예상치 못한 충격
월가에서는 벅셔의 대규모 인사가 단순한 인력 교체가 아니라 60년간 버핏이 만들고 유지해 온 '벅셔 웨이(Berkshire way)'의 대대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풀이했다.
가장 주목받는 변화는 토드 콤스(54)의 JP모건 이직이었다. 2010년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합류해 2020년부터 미국 2위 자동차보험사 가이코(GEICO) CEO까지 겸임했던 콤스는 한때 버핏의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던 핵심 인물이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콤스를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투자자이자 리더 중 한 명”이라고 칭한 적이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콤스는 JP모건의 100억 달러 규모 ‘전략적 투자 그룹’을 이끌게 되며, 이 그룹은 1.5조 달러 규모의 ‘보안 및 회복력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미국 내 제조업 가속화와 혁신 투자를 담당한다. 버핏 밑에서 포트폴리오 일부를 관리하는 역할과는 차원이 다른 기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버핏은 JP모건의 발표에 대해 “JP모건은 늘 그렇듯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며 콤스가 “가이코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영입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칭찬 속에는 벅셔가 핵심 인력을 잃었다는 쓰라린 현실이 숨어 있다.

'버핏 웨이'의 대대적 변화
콤스의 이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벅셔의 구조 변화다. 버핏의 경영 철학 핵심은 극단적 탈중앙화였다. 본사 직원 수십 명으로 수십 개 자회사를 운영하고, 각 자회사 CEO에게 거의 무제한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벅셔는 IR(투자자 관계), 홍보, 법무 부서조차 없었다. 버핏의 연례서한과 주주총회가 전부였고, 분기 실적 발표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5년 12월 발표된 인사는 그 모델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한다. 넷젯(NetJets) CEO 애덤 존슨이 ‘소비재·서비스·유통 부문 사장’이라는 신설 직책을 맡게 됐다. 벅셔 역사상 처음으로 32개 자회사 CEO들을 지원하는 중간 관리 계층이 생긴 것이다.
그레그 에이블은 존슨을 “장기적 주주 가치를 창출하는 검증된 능력을 가진 뛰어난 리더”라고 소개하며 그가 “벅셔의 문화와 가치를 유지하면서 자회사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냅(Snap)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오설리번이 벅셔 최초의 사내 법무총괄(General Counsel)로 임명됐다. 지금까지 벅셔는 모든 법률 업무를 외부 로펌에 의존해 왔다.
또 40년 근속한 최고재무책임자(CFO) 마크 햄버그가 2026년 6월 은퇴하고 벅셔해서웨이 에너지의 CFO 찰스 창이 후임을 맡는다. 버핏은 햄버그에 대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주주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크리스토퍼 데이비스 허드슨 밸류 파트너스의 대표는 “에이블과 테드 웨슬러가 공개 주식 포트폴리오 운용에서 맡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촉구하며 “우리 모두 ‘벅셔 웨이’를 사랑하지만, 이제 1조 달러 기업의 첫 리더십 전환이라는 현실에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냉담한 반응…‘버핏 프리미엄’ 증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있을 법도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버핏의 퇴진 발표 이후 벅셔 주가는 5%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20% 상승했다.12월 인사 발표 후에도 주가는 약 1% 하락했으며, 5월 고점 대비 7% 이상 하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KBW(키프, 브루에트 & 우즈)의 애널리스트 마이어 실즈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벅셔의 문화 지속성에 대한 감정적 투자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상당한 변화가 있으면 회사의 역동성에 대한 환호보다 걱정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KBW는 올해 초 버핏의 퇴임을 이유로 벅셔 주식을 ‘underperform(시장수익률 하회)’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그레그 에이블은 2018년부터 비보험 부문을 총괄해 온 운영 전문가다. 벅셔의 에너지 부문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공로로 비보험 사업 총괄 부회장이 됐다. 버핏은 에이블을 “훌륭한 관리자이자 정직한 소통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에이블이 투자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벅셔가 미국 경제를 대변하는 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다양한 분야의 자회사 때문만이 아니다.
워런 버핏이 운용한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핵심이었다. CFRA 애널리스트 캐시 사이퍼트는 “에이블은 강력한 운영 및 재무 관리 배경을 갖췄지만 전문 자산 운용 경력이 없고, 무엇보다 버핏과 같은 시장의 신뢰가 없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버핏은 보험 사업이 창출하는 현금흐름, 즉 플로트(float) 능력을 장기 투자에 활용해 복리효과를 극대화하는 모델을 60년간 완벽히 실행했다. 에이블이 애플을 절반의 가격에 사고, JP모건을 팔고도 그 판단을 10년 후에 정당화할 수 있을까. 시장은 그의 결정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이미 ‘영광’은 예전 같지 않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벅셔의 성과는 이미 버핏 시대 말기부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벅셔가 최근 쌓아 둔 현금은 35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세후 영업이익이 연 500억 달러인 기업이 7년치 이익에 해당하는 현금을 쌓아 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고평가된 시장에 대한 버핏 특유의 방어적 스탠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방어가 아닌 ‘기회의 포기’로 해석한다.

버핏은 최근 5년간 주식을 꾸준히 매각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애플 지분의 절반 매도로, 약 1000억 달러의 이익을 실현했지만 이후 주가 상승분 500억 달러를 놓쳤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JP모건과 웰스파고를 저점에서 정리했지만, 지금 이들의 주가는 당시 대비 수 배에 달한다.
배런스에 따르면 벅셔의 주가수익률은 시장 대비 지난 3년, 10년, 15년 기준으로 모두 지수를 밑돌았다. 인수합병(M&A) 성적은 더 부진하다. 지난 15년간 투입한 800억 달러의 주요 인수 건은 대부분 S&P500 지수 투자 대비 저조한 성과를 냈다.
루브리졸(2011년 97억 달러)은 수익이 인수 당시와 동일하고, 크래프트하인츠 지분 가치는 90억 달러 투자 원금 이하로 떨어졌다. 프리시전 캐스트파츠(370억 달러)는 10년이 걸려서야 원금을 회복했다. 투자은행 에드워드존스의 애널리스트 짐 샤나한은 “벅셔는 주식 시장의 랠리를 놓치고 현금만 쌓았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에이블 체제에는 구조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보험 부문을 총괄하는 아지트 자인은 74세로 버핏의 40년 측근이자 뛰어난 보험 리스크 전문가지만 1~2년 내 은퇴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5월 주주총회에서 자인은 콤스가 “가이코 턴어라운드에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평가하면서도 “기술 분야에서는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그 과제는 1986년 보험금 청구 담당자로 입사해 최고운영책임자(COO)까지 오른 낸시 피어스 신임 CEO에게 넘어갔다.
투자 부문도 불확실하다. 버핏은 에이블이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맡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 책임 중 얼마나가 또 다른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테드 웨슬러에게 위임될지는 불분명하다.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는 3000억 달러 포트폴리오 중 10%만 운용해 왔다. 버핏은 10여 년 전 이들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 했지만, 최근에는 에이블이 포트폴리오를 맡아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벅셔에는 여전히 IR, 홍보 부서가 없다. 법무 부서는 이번에 처음 생겼다. 에이블은 이런 기능을 추가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모든 변화가 ‘제도적 공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버핏 시대에 벅셔는 버핏 개인의 판단력으로 작동했지만, 에이블 시대에는 팀으로,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벅셔는 이런 경험이 없다.
CNBC 버핏 워치는 “내년 중 벅셔가 투자자, 미디어, 정부 관계 부서를 본사에 추가하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버핏이 계속 출근하는 한 배당금 지급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믿고 맡기는’ 버핏이 없다
버핏 시대의 벅셔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독특한 사회적 계약 위에 서 있었다. 300만 주주들은 자신의 자본을 한 사람의 판단에 전적으로 위임했다. 배당도 요구하지 않았고, 분기 실적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투자 전략의 상세한 공개도 요구하지 않았다. 연례서한 한 통과 주주총회 하루,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와 주주들 사이의 소통 전부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워런 버핏이라는 이름 석 자였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제 에이블이 성공하려면 벅셔를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버핏 시대에는 ‘불필요한 관료주의’로 치부됐던 것들이 에이블 시대에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믿고 맡기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확인하고, 검증하고, 그래도 의심하는’ 시대다.
시장에서는 결국 에이블의 벅셔가 배당 지급을 단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벅셔는 1967년 이후 단 한 번도 배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거의 60년이다. 이것은 미국 대형 기업 중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S&P500 기업 중 80% 이상이 배당을 지급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JP모건 같은 현금 부자 기업들도 모두 배당을 한다. 그런데 벅셔는 왜 안 했는가.
버핏의 논리는 단순했다. “내가 1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당신 주머니에 있는 1달러보다 가치가 있다.”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60년간의 실적이 이를 뒷받침했다. 버핏은 주주들에게 돌려줄 돈을 재투자해서 더 큰 가치를 창출했다. 배당으로 1달러를 받는 것보다 버핏이 그 1달러를 굴려서 5달러, 10달러로 만들어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믿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재무적 계산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였다. 주주들은 버핏에게 “당신이 내 돈을 더 잘 쓸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런 수준의 위임은 현대 자본시장에서 거의 유례가 없다. 대부분의 CEO들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외치면서도 주주들의 끊임없는 감시와 요구에 시달린다. 버핏은 그런 감시로부터 자유로웠다. 주주들이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블에게는 그런 특권이 없다. 지금 벅셔는 3500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것은 세후 영업이익의 7년치에 해당한다. 버핏이 이 현금을 쌓아 둘 때 시장은 “시장이 고평가됐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버핏이 뭔가를 알고 있다,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에이블이 같은 양의 현금을 쌓아 두면 시장은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배당 지급은 단순히 현금을 나눠주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경영진과 주주 사이의 권력 관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배당을 하면 경영진은 매년 또는 매 분기 일정 금액을 주주들에게 ‘증명’해야 한다.

연례서한으로 메워 온 소통 공백
버핏은 겸손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그의 실적이 그를 대신해 말했기 때문이다. 에이블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버핏만큼 현금을 잘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 증명에는 시간이 걸린다. 10년, 어쩌면 20년. 그 사이에 주주들의 인내심이 바닥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벅셔가 배당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3500억 달러의 현금 중 일부, 예를 들어 연간 100억~200억 달러를 배당한다고 가정하면 시가총액 1조 달러 기준으로 1~2%의 배당수익률이다. 미국 대형주 평균(약 1.5%)과 비슷한 수준이다. 벅셔의 ‘특별함’은 줄어들겠지만, 대신 ‘정상적인 대기업’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버핏이 아직 회장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CNBC 버핏 워치는 버핏이 계속 출근하는 한 배당금 지급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핏에게 배당 지급은 60년간의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버핏이 완전히 물러나면? 에이블은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벅셔는 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장 기업들이 매 분기 CEO와 CFO가 나와서 실적을 설명하고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벅셔의 분기 실적 발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10-Q 보고서(분기 보고서)’가 전부다. 숫자만 있고 설명은 없다.
버핏은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분기 실적에 집착하면 장기적 사고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월가의 단기주의에 대한 저항이었고, 실제로 많은 경영학자들과 투자자들이 이를 지지했다. 분기 실적 압박이 기업들의 단기 행동을 유발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버핏이 침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연례서한이 그 공백을 채웠기 때문이다. 버핏의 연례서한은 단순한 기업 보고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투자 철학의 교과서였고,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었으며, 때로는 문학적 수준의 글쓰기였다. 투자자들은 1년을 기다렸다가 그 서한을 읽었다. 분기별로 숫자를 체크하지 않아도 버핏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벅셔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에이블이 버핏 수준의 서한을 쓸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버핏의 글쓰기 능력은 그의 투자 능력만큼이나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금융 개념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유머와 지혜를 버무려 읽는 재미까지 주는 것. 이것은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에이블은 훌륭한 운영 전문가이지만, 글쟁이는 아니다
이에 따라 에이블 시대의 벅셔는 ‘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을 할 가능성이 높다. 벅셔는 복잡한 기업이다. 60개 이상의 자회사가 있고, 사업 분야는 보험에서 철도, 에너지에서 소매업까지 다양하다. 3000억 달러 규모의 주식 포트폴리오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연례서한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버핏이니까 가능했다. 에이블은 더 자주, 더 상세하게 소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쌓아 둔 현금만 3500억 달러


복잡한 기업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으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그에 맞게 주가를 매긴다. 버핏은 그의 명성으로 이 문제를 우회했다. '버핏이 잘하고 있겠지'라는 믿음이 정보의 부재를 대체했다. 에이블에게는 그런 우회로가 없다. 정면으로 투명성을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
버핏은 평생 액티브 투자의 대가로 살았다. 시장을 이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 저비용 S&P500 인덱스 펀드가 최선의 선택이다.” 그리고 자신의 유언에 이런 조항을 넣었다. “내 아내에게 남기는 돈의 90%는 S&P500 인덱스 펀드에, 10%는 단기 국채에 투자하라.”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버핏은 자신과 같은 수준의 투자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은 장기적으로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수수료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평범한 투자자에게는 시장 평균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가 합리적인 선택이다.
버핏의 투자 성공은 단순히 종목 선정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60년간 쌓아 온 네트워크, 거래상대방 들의 신뢰, 정보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무엇보다 “버핏이 투자하면 주가가 오른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힘이 있었다. 버핏이 어떤 주식을 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다른 투자자들이 따라 사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이것은 버핏만의 특권이었다.
에이블에게는, 또는 에이블 체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에게는 이런 특권이 없다. 그들이 어떤 주식을 사도 ‘버핏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투자 판단의 질로만 승부해야 한다. 그것은 훨씬 어려운 게임이다.
현재 벅셔의 포트폴리오 구조는 현금 3500억 달러, 주식 3000억 달러, 채권 약 170억 달러. 이것은 극단적인 바벨(barbell) 전략이다. 한쪽 끝에는 거의 무위험인 현금이, 다른 쪽 끝에는 주식 위험이 집중돼 있다. 중간은 비어 있다. 버핏은 이 구조로 기회를 기다렸다. 시장이 폭락하면 3500억 달러의 현금으로 저점 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이 에이블 시대에도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버핏의 ‘기회 포착 능력’이 없다면, 3500억 달러의 현금은 그냥 놀고 있는 자본일 뿐이다. 단기 국채 수익률(현재 약 4~5%)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월가가 꺼리는 복합기업 구조
에이블 시대 벅셔는 사업 구조를 단순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벅셔는 60개 이상의 자회사를 거느린 복합기업(conglomerate)이다. 보험(가이코·제너럴 리), 철도(BNSF), 에너지(벅셔해서웨이 에너지), 제조업(프리시전 캐스트파츠·루브리졸), 소매업(시스캔디·네브라스카 퍼니처 마트), 서비스업(넷젯·비즈니스 와이어) 등 분야가 다양하다.


월가는 복합기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복합기업 디스카운트(conglomerate discount)’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여러 사업을 한 회사에 묶어 놓으면 각 사업의 가치를 합한 것보다 전체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된다는 것이다. 이는 복잡성과 자본 배분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복합기업 내에서 수익성 낮은 사업이 수익성 높은 사업의 현금을 갉아먹을 수 있다. 또 한 사람이 60개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버핏은 이 디스카운트를 그의 투자 능력으로 상쇄했다. ‘버핏이 관리하는 복합기업’은 일반적인 복합기업과 달랐다. 자본 배분이 탁월했고, 자회사 CEO들에게 자율권을 주면서도 핵심적인 결정은 버핏이 직접 했다. 시장은 이를 인정해서 벅셔에 프리미엄을 부여했다.버핏이 없으면? 벅셔는 그냥 또 하나의 복합기업이 된다. 복합기업 디스카운트가 적용된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사업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60개 자회사 중 핵심적인 10개(가이코·BNSF·벅셔해서웨이 에너지·프리시전 캐스트파츠 등)를 제외한 나머지 소규모 사업부는 매각하거나 분사할 수 있다. 시스캔디(초콜릿), 데어리퀸(아이스크림), 네브라스카 퍼니처 마트(가구) 같은 소매업 자회사들은 벅셔의 전체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이들을 매각하면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경영진은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벅셔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버핏의 유산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버핏은 “좋은 사업은 영원히 보유한다”고 말했다. 시스캔디는 1972년에 인수해서 50년 넘게 보유하고 있다. 이런 자회사들을 파는 것은 버핏의 철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버핏의 철학이 에이블에게도 적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버핏은 ‘영원히 보유’할 능력이 있었다. 60개 사업을 관리하면서도 각각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에이블에게는 ‘선택과 집중’이 더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버핏 시대의 벅셔는 투자자들과 독특한 사회적 계약을 맺고 있었다. 배당 없음, 분기 실적 설명 없음, 투자 전략 공개 없음. 대신 버핏에 대한 절대적 신뢰. 이것은 현대 자본시장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관계였다.
에이블 시대에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필요하다. 그 계약의 핵심은 ‘투명성’과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더 자주 소통하고, 성과에 대해 더 명확하게 책임지는 것이다. 또 배당이든 자사주 매입이든 현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분기마다 실적을 설명하고, 투자 전략의 기대 수준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벅셔의 ‘특별함’을 포기고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버핏의 벅셔는 특별했다. 에이블의 벅셔는 좀 더 ‘정상적인’ 대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이 ‘믿고 맡기는’ 버핏의 벅셔는 끝났다. 지금은 ‘확인하고 투자하는’ 시대다. 에이블이 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투자자들의 기대에 맞게 벅셔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벅셔는 버핏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천재에 의존하는 대신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기업. 그것이 벅셔의 다음 60년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시스템이 영웅을 대체할 수 있는가
벅셔의 딜레마는 역사적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불세출의 영웅과 인재가 난무했던 삼국지 시대의 촉, 한, 위 세 나라는 5대를 넘기지 못했다. 반면 네로와 칼리굴라 같은 암군과 폭군이 존재했던 로마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했다. 바로 공화정이라는 시스템 덕분이었다.
워런 버핏은 한 인물의 카리스마가 ‘제도’적인 수준으로 승화한 드문 케이스다. 지금까지 벅셔는 수익력이나 현금흐름 같은 물리적 가치뿐 아니라 경영진의 판단력과 전략적 예측력에서 ‘신뢰 프리미엄’의 극단까지 간 기업이었다.
버핏은 수없이 ‘그의 승리’가 아닌 ‘벅셔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벅셔의 판단이 아닌 버핏의 판단으로 해석했다. 극단적으로 말해 벅셔는 버핏의 껍데기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왜 투자자들은 여전히 벅셔를 보유해야 할까. 답은 역설적이게도 ‘안정성’이다. 시가총액 1조 달러, 현금 3500억 달러, 세후 수익력 500억 달러를 가진 기업이 파산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벅셔는 자본을 공급한 쪽이었지 구제금융을 받은 쪽은 아니었다.
포스트 버핏 시대에 벅셔는 ‘공격적 성장주’가 아니라 ‘방어적 가치주’로 재포지셔닝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300만 벅셔 주주들이 원하는 미래인가라는 점이다. 그들의 상당수는 버핏의 카리스마와 전설에 매료된 이들이다.
벅셔 이사인 크리스 데이비스는 2023년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버핏과 멍거가 없는 세상에 벅셔 구조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내부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벅셔는 지킬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지킬 가치와 프리미엄을 받을 가치는 다르다. 에이블은 이를 증명해야 햐는 숙제가 있으며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벅셔해서웨이의 ‘탈버핏화’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60년간 유지된 경영 모델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시장은 이미 ‘버핏 프리미엄’을 철회하고 있다. 에이블에게 남은 과제는 버핏이 만든 가치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영 방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벅셔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업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해 온 모든 기업들, 특히 한국의 오너 기업들에 벅셔의 전환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시스템으로 대체돼야 지속 가능하다’는 교훈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