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9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고용 안정성이 있는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데, 원래는 정반대가 돼야 한다”며 “정부부터 모범이 돼야 한다”고 했다. 기간제 근로자(계약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는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만큼 일종의 ‘비정규직 수당’ 개념으로 추가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또 공공 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는 근속 기간이 1년이 되지 않아도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경제계에서 “지금의 경직적 고용시장 구조에서는 정부 인건비 부담만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합리적인 사회는 똑같은 일을 하면 비정규직에 임금을 더 준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정규직 임금의 50~60%만 준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부분이 우리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는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도 (계약직 근로 기간) 2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니 1년11개월 지나면 해고하고, 퇴직금 안 주겠다고 11개월씩 계약한다”며 “정부가 그러는 건 말이 안 된다. 부도덕하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 기간은 2년을 넘지 않아야 하고, 모든 근로자는 1년 이상 일해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더 짧게 일하면 임금을 더 많이 줘야 한다”며 근무 기간 1년을 채우지 못했더라도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김 장관에게 지시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평소 정부가 계약직 근로자를 고용해 놓고 최저임금만 지급하는 관행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정부 차원에서 실태 조사 후 대책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적정임금' 지급 지시…노동부에 실태조사 주문
"최저임금은 금지선…권장액 아냐, 같은 일하면 비정규직이 더 받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9일 “같은 일을 하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임금을 더 줘야 한다”며 비정규직 근로자 기본임금에 일종의 ‘비정규직 수당’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위험수당’ ‘격오지 근무수당’을 지급하는 것처럼 고용안정성이 낮은 비정규직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하자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공정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와 산하 공공기관의 기간제 근로자들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한 적이 있는데,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좋은 의도와 무관하게 국내 고용 환경을 감안하면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최저임금은 금지선…권장액 아냐, 같은 일하면 비정규직이 더 받아야"
◇“1년 근무 안 해도 퇴직금 줘라”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부의 최저임금 지급 관행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최저임금은 ‘그 이하로 주면 절대 안 된다’는 금지선이지, 권장되는 임금이 아니다”며 “그런데 왜 정부, 공공기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최저임금만 주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가 일용직·비정규직을 고용할 때 최저임금이 아니라 ‘적정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저임금은 법상 사측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근로자에게 줘야 하는 최저 수준 임금이다. 적정임금은 법적 개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물가, 노동 형태·가치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하고 지급하는 수준의 임금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이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을 지급하라고 한 건 결국 추가 보상을 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나아가 공공 부문만큼은 같은 일을 한다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게 더 높은 임금이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임금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관련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김 장관은 “정부가 공공 부문의 모범적 사용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공공 부문 근로자 퇴직금과 관련해서도 근로기준법상 퇴직금 지급 요건인 ‘1년 계속근로’를 만족하지 못해도 퇴직금을 주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 달밖에 일을 못 했으면 (오히려) 임금을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 수당’ 全 공공부문 확대되나
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이던 2021년 ‘비정규직 공정 수당’을 도입했다. 이날 발언과 비슷한 맥락의 제도라는 평가가 많다. 경기도와 산하 공공기관 기간제 근로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근무 기간에 비례해 기본급의 5~10%를 수당으로 차등 지급했다. 2021년 24억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이 대통령이 이날 민간 영역은 대상으로 삼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보다 높이는 제도를 민간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전문가들은 사회 안전망 측면에서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국내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규직 근로자 보호 수준이 매우 높다”며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만 높이면 막대한 재정 소요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공 부문 기간제 근로자는 약 24만 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월 10만원, 1년에 120만원씩 임금을 더 지급할 경우 2900억여원의 재정이 추가로 들어간다.
주요국 대비 높은 최저임금 수준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주휴수당을 고려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1만2000원대(시급)다. 노동 분야 전문가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무시하고 ‘위험 보상’ 논리만 적용해 비정규직 인건비만 올리라는 주장은 고용시장 혼란과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개혁을 통한 고용시장 유연성 확보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내년은 6대(규제·고용·금융·연금·교육·공공) 핵심 분야 개혁을 필두로 국민 삶 속에서 국정 성과가 몸으로 느껴지는 국가 대도약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갈등과 저항이 불가피한데 이를 이겨내야 변화가 있다. 그게 바로 개혁”이라고 했다.
한재영/곽용희 기자 jy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