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미래를 오지 않은 시간, 앞으로 다가올 시간, 상상으로 만나는 관념 시간으로 이해한다. 정말 그럴까? 내 생각에 미래는 선으로 오지 않고 점으로 흩뿌려진다. 흩뿌려지는 미래는 동시에 도착할 수가 없다. 먼저 온 미래가 있고, 늦은 미래가 있다. 먼저 온 미래는 미래 성분들이 성긴 형태로 존재하기에 극소수만이 알아차릴 뿐이다. 미래는 지금 이 자리에 점유율, 분포, 빈도수, 영향의 범주를 키우며 제 실체를 드러낸다. 미래 성분들의 현실 점유율과 분포, 빈도수가 커지고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잊히지 않는 그 콩나물국밥집
서른 후반에 자발적 파산을 한 뒤 생업의 기반인 출판사를 정리했다. 출판사를 정리하며 세월과 인심의 냉엄함을 처음으로 겪었다. 그 혼돈의 격류에서 시난고난하면서도 살아남았으니 지금 허접한 문장 몇 줄이라도 끼적이며 살 수 있었을 테다. 비겁한 변명이겠지만 내 불행은 악연이 빚은 결과다. 불행이 차린 만찬에 손대는 사람들은 불행을 피하지 못한다. 그 만찬을 먹은 자는 가난과 근심에 빠진다. 불행이 차린 만찬에 손대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생을 끌어오며 나는 뜻밖에도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큰 위로를 얻었다.
40대로 접어들며 세기말을 겪었다. Y2K로 인한 악성 소문이 부풀고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한때 서울 강남의 소규모 빌딩의 건물주였는데, 사업체가 파산하며 건물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세기말은 큰 소동 없이 지나갔다. 휴거의 기적도 없었고, 세상은 아마겟돈으로 잿더미가 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서 내 품을 떠났다.
세기말로 어수선하던 그 시절 나는 서울의 한 대학 앞 먹자골목의 오피스텔을 빌려 먹고 자며 한 세기의 문학사를 정리하는 원고를 몇 년째 쓰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젊은이들은 연애에 열을 올리고 행운의 편지도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일곱 해나 걸려 그 원고를 탈고해 넘긴 뒤 대학가 골목의 낡은 오피스텔을 떠났다. 그런 까닭으로 오피스텔 있는 먹자골목 초입에 있던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집도 멀어졌다.
좋은 生이란 좋은 음식이 있는 삶
내가 단골로 다닌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집은 긴 테이블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일 만큼 소규모지만 맛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항상 손님이 끊이지를 않았다. 어떤 게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인지를 나는 분간하지 못한다. 미식 세례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도 내 입맛에 보글보글 끓는 그 집 콩나물국밥은 맛있었다. 콩나물국밥에 어떤 재료를 썼는지를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 콩나물국밥은 신선한 콩나물을 듬뿍 넣고 황태 우려낸 국물을 썼을 테다. 콩나물국밥을 토렴해서 수란을 곁들여 내놓았는데, 주방장에게 비장의 그 무엇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우기나 눈가루 푸슬푸슬 내리는 겨울 아침에 눈곱만 떼고 추리닝을 입은 채 그 집 콩나물국밥을 먹는 게 일종의 낙이었다. 나는 참기름 냄새가 고소한 수란에 김 가루를 뿌리고 뜨거운 국물을 떠서 넣고 휘저어 먹었다. 콩나물국밥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었다. 국밥은 뜨거워서 그 국물이 넘어가면 언 속이 봄눈 녹듯이 풀렸다. 내게는 아침마다 콩나물국밥과 수란 먹는 게 보람 중 하나였다.
콩나물국밥집 주인이자 주방장은 40대 남자였는데, 제 콩나물국밥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세월이 흘러도 졸업생들이 그 콩나물국밥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온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 시절에 먹은 콩나물국밥이 어땠는지, 그 맛과 향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다.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H대 앞 내 단골이었던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과 딱히 구별할 수 없었다.
좋은 인생에는 늘 좋은 재료로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 따른다. 어쩌면 좋은 인생이란 좋은 음식이 있는 인생인지도 모른다. 좋은 요리란 말에는 여러 함의가 깃들어 있다. 인생의 최대 위기이자 침체기였던 그 시절 심신의 안정을 유지하며 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덕분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악덕이여 용서를 구하라
날마다 한 끼 정도 그 집 콩나물국밥을 먹던 시절은 내 인생이 곤고할 때였다. 다행한 것은 그 당시 교유한 사람 중 악인이 없었다는 점이다. 악인이란 시간과 에너지를 쓸모없이 빼앗는 사람, 공연히 악의를 품고 해코지를 하거나 제 잇속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에 끼어들어 소모시키는 자는 다 악인이다. 살면서 겪어 보니 악인은 하찮고 비열하다. 신체는 강건할지라도 내면은 허술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은 흔하다. 세계의 악덕이여, 내게 용서를 구하라. 하지만 악덕들이 용서를 구하는 법은 없다. 한 생을 살면서 악인을 마주치지 않고 사는 건 드문 행운이다. 나는 분하게도 악인을 만나고, 그 악연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헛심을 썼다.
얼마 전 전주 TV의 강연 청탁을 받아 1박2일로 다녀왔다. 방송국의 환대는 넘치고, 그 덕분에 강연 분위기는 내내 훈훈했다. 나는 강연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전주의 풍류와 음식을 두루 꿰고 있는 방송국 대표에게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에 대해 물었다.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의 유래와 다른 콩나물국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 내력과 오늘의 사정을 훤히 다 알고 있는 그는 얘기 끝에 원조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집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덧붙여 전주 토박이들이 꼽는 콩나물국밥 맛집 몇 군데를 천거해줬다. 다른 일정 탓에 그가 맛집으로 일러준 왱이콩나물국밥집을 들르지 못한 채 전주를 떠난 것은 오랫동안 섭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