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연내 입법'을 목표로 속도전을 펼쳐 온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에 급제동이 걸렸다. 당 내부는 물론 범여권과 법조계에서도 위헌 우려가 잇달아 제기되자 추가로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속도 조절에 나선 상황이다. 이로써 9일 본회의에서의 강행 처리는 불발됐다. 민주당은 연내 처리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의원총회가 마무리된 뒤 기자들을 만나 "2시간가량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왜곡죄 등 사법개혁안을 주로 논의했다"며 "많은 의원이 찬반 의견이 나왔고 오늘 의총에서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변인은 "내란전담재판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이견이 없었다"면서도 "일부 위헌성 논란과 관련해 상대방에게 굳이 빌미를 줄 필요가 있느냐, 충분히 검토해서 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의총에서 발언한 의원들 가운데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판사 추천 위원회에 법무부 장관이 포함되면서, 사법부 독립성 침해와 같은 위헌 소지가 지적되고 있다.
대통령실도 "내란전담재판부를 추진하는 데 원칙적으로 생각을 같이한다"면서 "위헌 소지가 최소화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 조국혁신당, 민주당 추진 법안 잇단 제동
범여권에 속하는 조국혁신당 또한 내란전담재판부법 등 민주당 역점 입법 과제에 잇단 제동을 걸었다. 조국 대표 복귀 이후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본격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다.
지난 5일, 조국혁신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법이 위헌 소지가 있고, 그에 따라 재판이 오랫동안 정지될 수 있는 만큼 일부 조항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민주당과 협력하며 '범여권'으로 분류돼 왔던 조국혁신당의 이런 목소리를 정계의 주목을 끌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그간 사법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며 법안 신속 처리 의지를 거듭 강조해 왔다. 그는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국민적 신뢰를 잃은 사법부를 정상화하기 위해 많은 의원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사법개혁안을 준비했다"며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내란수괴 윤석열을 단죄하고 내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법"이라며 추진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1인1표제 논란에 이어 강경파 법사위에 힘을 실어 온 정 대표의 강경 드라이브에 연달아 제동이 걸리면서 리더십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법관들 "내란재판부, 재판 독립성 침해"
전국 각급 법원 대표들이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왜곡죄 신설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고 재판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민주당의 밀어붙이기에 부담이 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8일 오후 약 6시간에 걸친 회의를 마친 뒤 "비상계엄 전담재판부 설치 관련 법안과 법 왜곡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해당 안건은 사전에 상정되지 않았지만 이날 법원행정처가 법안 진행 경과와 내용, 관련 입장을 설명한 다음 현장에서 추가됐다.
법관대표회의는 최초 안건이던 사법제도 개선에 관해 "국민의 권리 구제를 증진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상고심 제도 개선에 대해선 "충분한 공감대와 실증적 논의를 거쳐 사실심을 약화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사실심 강화를 위한 방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대법관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의 경우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천위의 다양성과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검증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관 인사·평가제도 변경에 관해선 "재판 독립과 법관 신분 보장, 국민의 사법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단기적 논의나 사회 여론에 따라 성급하게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법관 인사 및 평가제도 변경은 충분한 연구와 폭넓은 논의를 거쳐 법관들의 의견뿐 아니라 국민들의 기대와 우려도 균형 있게 수렴하여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국민의힘 "민주당 입법 폭주"
국민의힘은 이날 '이재명 정부·더불어민주당 입법 폭주 국민 고발회'를 열고 법학 교수·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발표를 들으며 이들 법안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당은 법왜곡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범위 확대 법안은 '공포 정치·정치 보복' 법안으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대법관 증원, 4심제(재판소원제) 도입 법안은 '사법부 파괴' 법안으로 각각 명명했다.
또 필리버스터 제한 법안과 정당 거리 현수막 규제 법안, 유튜브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법안에 대해서는 '국민 입틀막' 법안으로 이름을 붙이고 규탄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목표는 야당을 말살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 권력까지 싹쓸이해 견제받지 않는 이재명 민주당 일극 독재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임 중에 대통령 이재명의 범죄 의혹, 범죄 사실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흑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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