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평균의 붕괴’다. 양극화는 이미 21세기 세계경제의 구조적 현상이었다. 2026년의 양극화 중심에는 AI가 있다. AI 혁신이 산업·기업·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불균등하게 확산하면서 세계는 점점 더 두 갈래로 갈라지는 구조로 접어들고 있다. 구글 전 CEO 모 가우닷(Mo Gawdat)의 경고는 2026년 현실에서 가시화될 ‘AI 포비아(AI phobia)’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2027년까지 AI에 의해 중산층이 붕괴할 것이다.”
중간의 붕괴
가장 먼저 변화를 마주칠 곳은 노동시장이다. 포춘지는 기업의 일반적인 조직도가 조용한 혁명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밑이 탄탄하고 고위직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형 구조에서 중간 관리자와 신입 직원들이 줄어드는 정반대의 구조다.AI가 직업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경력 사다리’(신입사원에서 임원까지)의 가장 하단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미국 급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프트웨어 개발, 고객 서비스 등 AI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종에서 일하는 22~25세 청년층의 고용률은 2022년 이후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다른 연령층의 고용이 증가했음에도 이 연령대만 역주행한 셈이다.
이 충격은 개별 직종을 넘어 경제 구조 전체로 연쇄적으로 퍼지고 있다. BBC는 IT산업이 발달한 인도 사례를 지목하며 현지 산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신입 IT 졸업생의 최소 20~25%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는 제조업 기반이 약한 대신 IT·서비스업이 중산층 성장의 핵심 엔진이다. 이 엔진이 멈추면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 신규 IT 근로자들은 자동차·주택·프리미엄 소비를 떠받치는 새로운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현지 산업 관계자는 “IT 부문 축소는 부동산 시장과 프리미엄 소비, 관련 서비스 산업에 전방위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AI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 상업은행인 웰스파고의 분석에 따르면 S&P500(대형주)의 생산성은 챗GPT 이후 5.5% 급등했지만 러셀2000(소형주)은 12.3% 감소했다.
AI 기업 내에서도 승자독식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VC들은 “AI는 극소수의 압도적 승자를 만들어내는 시장”이라며 과대평가된 스타트업의 상당수가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 소프트웨어 유지 개발에 무제한 비용이 들어가고 비용을 투입하지 못한 기업은 도입 비용과 인프라 부담을 버티지 못해 경쟁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중소기업에 훨씬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2026년부터 본격화할 ‘AI법(AI Act)’은 막대한 규제 준수 비용과 복잡한 절차를 요구해 사실상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는 AI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나라 전쟁’에도 동일하다. IMF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 효과는 국가별 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AI 칩·모델·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투자 경쟁은 사실상 미·중 양강 구도다. 미국은 초거대 모델과 반도체의 헤게모니를 잡았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전력·데이터·칩 일체형 인프라’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며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AI 비전은 2026년 3월 발표될 차기 5개년 계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간 3단계 AI 확산 계획’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중견국들은 ‘필승 AI 경쟁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남긴 교훈에는 공급망이 있다. 미·중만으로는 지정학적 충격으로 인해 생성형 AI의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보스턴컬설팅그룹은 “생성형 AI 중견 강국이 될 잠재력을 가진 국가나 지역의 정부는 이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지정학적 역량’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