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해 유럽 주요국의 채권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 국고채 금리가 지난 한 달 반 사이 0.6%포인트 급등했다. 2010년 이후 국내 채권 금리 상승(채권 가격 하락)의 주요인이 대체로 미국 금리에 연동된 것과 달리 이번엔 나 홀로 금리 급등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재정 부담 심화와 급격한 원화 약세, 부동산 가격 급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고채 금리 급등 악순환

3일 금융투자업계와 삼성증권에 따르면 이번 채권 금리 상승에 따른 투자자 손실은 이날 기준 6.8%로 2010년 이후 다섯 번째로 크다. 최근 2년간 금리가 가장 낮았을 때 채권을 구매한 투자자가 금리 상승으로 본 최대 손실폭을 나타내는 채권 최대손실률(MDD·maximum drawdown) 기준이다. 2020년 이전에는 2011년 -6.8%, 2013년 -8.0%, 2017년 -10.3% 등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손실을 봤다. 김은기 삼성증권 선임연구원은 “10월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던 한은이 지난달 12일 이창용 총재의 외신 인터뷰를 기점으로 갑작스레 방향을 바꾸면서 시장 심리가 빠르게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이번 채권 손실은 한국 시장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불확실성 확대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달 12일 외신 인터뷰에서 한 ‘방향 전환’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이후 한은이 “금리 인상을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의 불안 심리는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국채 금리 상승은 더 가팔라졌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금리가 추가로 오르자 증권사들의 국채 매도세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통위 이후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했고, 손실을 줄이려는 증권사의 손절 물량이 다음날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증권사가 실적을 결산하는 북클로징(장부 마감)으로 수급이 약한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까지 오르면서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환율 상승은 물가와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동시에 자극했고, 환손실을 우려한 외국인이 국채 선물을 매도했다. 국채 매도는 환율 하락으로 이어져 금리 상승을 더 부추기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금리 급등은 금융회사의 손실로 3분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증권사 3분기 순이익은 거래 수수료 수입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기 대비 12.6% 감소했다. 대형사의 채권 관련 이익은 전 분기 대비 5018억원, 중소형사는 1255억원 줄었다. 채권 금리가 급등한 4분기에는 평가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회사채 조달 미루는 기업들
시장의 불안심리가 커지자 기업들은 자금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을 내년으로 잇따라 미뤘다. SK텔레콤(AAA)과 KCC글라스(AA) 등이 회사채 발행 일정을 연기했다.SK텔레콤은 24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했다가 발행 시기를 내년 1분기로 미뤘다. 다음달 만기가 도래하는 2100억원어치 회사채는 보유한 현금으로 우선 상환할 예정이다. KCC글라스도 이달로 예정한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 일정을 내년 1분기로 미뤘다.
회사채 발행 규모를 줄이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금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HDC는 1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규모를 줄였다. SK온도 1500억원 규모를 계획했으나 1000억원으로 축소해 발행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불안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내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운용 대표는 “환율과 부동산 불안으로 채권시장에 과도한 매도세가 나타났다”고 했다. 최진영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1본부장은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는 상황에서 물가와 금융 안정을 위해 내년 하반기 금리 인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정철/박주연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