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회사인 디아이씨(DIC)가 다목적 자율주행 전기차를 내놨다. 농업용 트랙터와 근거리 이동 카트를 대체할 수 있는 소형 전기 운반차로 국내외 시장을 동시 겨냥했다. 설립 이후 50년간 쌓은 차량 변속기 기술을 활용해 완성차업체들이 주목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뚫겠다는 포석이다. ◇ 국내 최초 자율주행 농업용 차량
디아이씨가 자회사인 제인모터스를 통해 출시한 테리안은 다목적 전기 운반차다. 농산물을 운반하는 경운기, 트랙터 대신 쓸 수 있고 넓은 산업 현장이나 골프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국내 농업용 이동수단 중 처음으로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갔다. 차량 내·외부에 설치된 센서와 주행 장치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담긴 도로 정보와 주변 상황을 인지하면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가령 스마트폰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자율주행 기능을 켜면 테리안이 알아서 가속페달을 밟고 운전대를 돌린다. 자율주행 중 전방에 사람이 나타나면 운전대를 꺾어 피해 지나갈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김성문 디아이씨 회장(사진)은 3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2019년 우리가 선보인 1t 전기트럭(칼마토)의 전동화 기술과 국내 자율주행로봇 전문기업인 트위니의 원천 기술을 접목했다”며 “기술 발전이 더딘 농업용 소형 운반차 시장을 겨냥해 내년까지 국내에서 1만 대 이상 판매하겠다”고 말했다.김 회장은 1976년 부산에서 대일공업이라는 상호로 자동차 부품업을 시작했다. 창업 초기부터 현대자동차에 감속기를 납품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1986년 차량 부품 업체 대호기계를 인수하고 1996년 울산에 공장을 지은 뒤 해외 진출을 본격 시작했다. 2006년 사명을 디아이씨로 바꾸고 2010년대 들어 전동 부품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며 전기차 역량을 키웠다.
◇ 트랙터처럼 농기계로도 변신
김 회장은 50년간 차 부품업계에서 갈고닦은 기술력을 테리안에 집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 480㎏까지 짐을 실을 수 있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에 등록된 국내 농업용 운반차 중 최대 적재량이다. 다른 농업용 차량에서 볼 수 없는 유압 펌프와 유압 리프트가 적용된 것도 차별점이다. 스마트폰을 눌러 유압 펌프 기능을 켜면 최대 30도까지 기울어져 곡물과 퇴비, 분뇨를 옮기는 데 유용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테리안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은 차량 후미에 달린 동력인출장치(PTO)다. PTO는 엔진 동력 일부를 뒷부분 모터로 가져와 각종 농기계를 돌리는 장치다. 보통 트랙터에 달려 있는데 농업 운반차에 적용한 건 국내에서 테리안이 처음이다. 200㎏의 파종기부터 400㎏에 달하는 퇴비살포기와 비료살포기를 PTO에 달면 농기계로 변신할 수 있다. 별도 충전시설 없이 가정 내 220V 전압으로 9시간이면 완충된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 운반차는 국내에서 연간 3000~4000대가량이 판매되고 있다. 트랙터, 경운기 등 농기계 시장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수만 대로 커진다고 디아이씨 측은 판단했다.
디아이씨는 제인모터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테리안을 판매할 방침이다. 주력 시장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농업용 운반차는 연간 56만 대다. 시장점유율 1위인 존디어의 농업 운반 차량 가격은 대당 1만8000달러(약 2640만원) 수준이다. 디아이씨는 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테리안은 2000만원대 초반에 팔고 일반 테리안은 1000만원대 초반에 내놓을 계획이다. 김 회장은 “농장과 축사, 과수원뿐 아니라 건설 공사 및 어업 현장, 골프장, 공원, 리조트까지 범위를 넓히면 테리안의 잠재 수요는 더 크다”며 “자율주행 선진국인 미국에서 최대 10만 대까지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대구=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