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03일 10:2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해는 여러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부동산이 전략적 핵심 이슈로 재부상한 해였다. 부동산은 생산라인 확장의 기반이자, 공급망 최적화의 출발점이며 유통망 운영 전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임차나 보유에 관계없이 대규모 차입이나 임차료 형태의 자금 집행이 이뤄진다. 이처럼 부동산은 그 자체의 자산 가치를 넘어 기업 가치와 직결되는 전략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금리와 스프레드가 점진적으로 정상화되는 가운데, 리파이낸싱 압력이 가중되고 섹터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우려 요소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ESG 관련 규제 강화로 추가 비용 부담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기업 경영진과 부동산 관리 책임자의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의사 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시나리오별 부동산 금융시장 전망과 대응 전략
향후 자금·금융시장은 ①완만한 금리 인하 ②현 수준 금리 유지 ③경기 둔화에 따른 재충격 등 세 가지 시나리오로 상정해 볼 수 있다. 먼저 완만한 금리 인하 시에는 업종·자산별로 스프레드의 비대칭성이 여전히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단기금리 조건이 리셋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와 함께 변동금리 부담이 완화되면서 네거티브 레버리지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로 고금리가 장기화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본환원율(Cap Rate)의 고평가 기조가 이어지고, 대출 만기 도래 시점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강화, 금리 인상 등 대출 조건이 재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차환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시장 참여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경기 둔화에 따른 재충격이 현실화되는 경우다. 부실채권(NPL) 거래가 부실자산의 저가거래(Distressed Trading)가 확대되고, 사모펀드(PE)나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급전이 필요한 우량 기업에 긴급 자금을 대출해주는 ‘레스큐 파이낸싱(Rescue Financing)’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든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부동산 관리 및 거래와 관련된 핵심 리스크 항목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첫째, 부동산 금융수단에 대한 위험 관리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 부동산 관련 대출, 리스 계약의 회차 별 상환스케줄, 만기, 이자율, 금리 구조(변동·고정), 담보 및 제반 약정사항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특히 금리 및 상환 일정 변동에 따른 부채상환비율(DSCR)과 시점별 현금 유동성 분석을 통해 위험 요소를 사전에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기민하게 적응할 수 있다.
둘째, 기존 위험 관리장치의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 금리 구조 전환(변동↔고정)이나 파생상품을 통한 금리 상한 설정 시 비용 대비 효익을 따져봐야 한다. 또한 기한이익상실(EoD) 발생 시 대응 방안, 예를 들면 세일즈 리스백(Sales and Leaseback) 구조를 활용한 자산유동화나 추가 크레딧 라인 확보 등의 실현 가능성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대체 자금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재충격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은행권의 대출 규제 강화돼 추가 대출이나 차환 등의 자금 조달에 제약사항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대출펀드, 보험사, 증권사 등 비(非)은행 민간 대출 채널을 사전에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산 섹터별로 양극화 현상 두드러져
부동산 시장의 자산 섹터별 현황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섹터 내 자산들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먼저 오피스 시장에서는 핵심 입지의 프라임급 오피스로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프라임급은 낮은 공실률을 유지하며 임대료 및 관리비의 견조한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등급이 낮은 세컨더리 오피스는 기존 임차인 유지와 신규 임차인 유치를 위한 지속적인 시설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임대차 조건 재협상이나 신규 임차인 유치 시에는 인테리어 지원금(Tenant Improvement), 무상임대(Rent free), 임대면적 유연화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해졌다.
물류센터 시장은 복합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리테일(이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했으나, 대규모 물류센터 신규 공급 확대로 임대료 상승세가 다소 둔화됐다. 여기에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인해 최근 2~3년간 신규 공급 물량을 소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의 경우 자동화 물류, 라스트마일, 복합 물류는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냉장·냉동 물류센터는 화주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공실 해소를 위해 상온 물류센터로의 전환을 검토하며 안정적인 임대 수익 확보 방안을 모색 중이다.
임대주택 시장에서는 1~2인 가구 중심의 세대구조 변화와 아파트의 높은 매매가격 부담이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임대주택시장에 공유주택 사업자의 등장과 확산으로 수요 유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안정적인 순운영수익(NOI)을 얻으려면 초기 투자비 최소화와 운영 효율화를 병행해야 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다수 호텔이 운영 적자를 견디지 못해 오피스텔, 주상복합 등으로 전환됐다. 이후 환율 상승, K-컬처 확산, 마이스(MICE) 산업 회복으로 방한 관광객이 증가했으나, 서울 지역은 개발부지의 제한적 공급과 최근 2~3년간의 건축비 상승이 신규 숙박시설 공급을 제약하고 있다. 이로 인해 럭셔리 호텔을 중심으로 객실당 평균 단가(ADR), 객실 점유율(OCC) 등 주요 운영지표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반면 지방 호텔시장은 방한관광객의 서울 집중 현상과 ‘호캉스’ 중심의 럭셔리 트렌드로 인해 서울 시장 대비 고전하고 있다.
리테일 시장은 온라인 시장 성장의 충격으로 부침을 겪으며, 단순한 쇼핑·먹거리 중심에서 ‘체험형’ 공간으로의 재편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됐다. 온라인과 차별화된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츠와 임차인 구성이 자산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마트, 롯데온은 옴니채널을 강화하고 있으며, 스타필드는 쇼핑·레저·전시 문화를 결합한 ‘하루 종일 머무르는 체류형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전통 리테일인 홈플러스나 1세대 쇼핑몰 원마운트의 기업회생은 리테일 시장 변화의 적극적인 대응 전략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커버넌트 리셋’ 시대, 부동산 리스크 관리 방안
차입금 만기가 다가올수록 금융기관과의 ‘대출 약정 조건 재조정’ 협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커버넌트 리셋(Covenant Reset)’이라 부른다. 이는 대출한도, 담보인정비율, 원리금 상환방법, 이자율, 상환스케줄과 같은 약정 조건을 현 시장 상황에 맞게 다시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에서는 그 대가로 약정수수료, 일부 상환, 담보 보강, 현금관리 강화 등의 조건이 수반된다.회사 경영진과 부동산 관리자는 커버넌트 리셋에 대응하기 위해 실물자산 시장과 부동산 자금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 사항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보유 부동산이 회사의 핵심 운영 자산인지 여부를 비롯해, 금리 변동이 자산·부채 규모와 약정 기준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현재의 근무·생산·물류 네트워크가 임대료·운영비·재고비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부동산과 관련한 수요·규제·ESG 위험은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보유자산 관련 보증 및 대출 익스포저 관리 △보유자산별 금리·임대료 변동·공실 등에 따른 시나리오별 현금흐름 민감도 관리 △회계 및 공시사항 점검 △차환 또는 대출 구조 재설계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포트폴리오 리포지셔닝을 통한 자산 최유효화 전략 수립 △시설관리 및 에너지 체계 재구축 △투명한 자산관리 체계 정립을 통한 운영 효율화와 ESG 이행 방안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
부동산은 더 이상 단순한 ‘시설 관리’의 영역이 아니다. 앞으로의 부동산 의사 결정은 자본 비용, 현금 흐름, 밸류체인, ESG를 함께 고려해 최적화해야 하는 재무적 과제가 됐다. 차환의 파도를 넘고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며 효율적 수익 모델로 전환하는 기만이 궁극적으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과 해법은 다를 수 있어도, 출발점과 프레임은 동일하다.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전략을 다시 점검할 시점이다.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기업이 다가올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