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 미국은 회색빛 안개에 잠겼다. 대공황 여파로 실직자가 쏟아졌고, 무료 급식소 앞은 끼니를 때우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암울한 현실에도 사람들은 소소한 낙을 찾았다. 금주령(1920~1933년)을 피해 문을 연 간판 없는 술집(스피크이지 바)에서 친구들과 잔을 기울였고, 은밀한 재즈 리듬에 몸을 맡기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었다.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했던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두 편이 한국 관객을 동시에 찾는다. 이달 개막하는 뮤지컬 ‘슈가’(12월 12일~2026년 2월 22일)와 ‘보니 앤 클라이드’(12월 11일~2026년 3월 2일)다.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슈가’는 국내 초연 작품이다. 내용 자체는 익히 알려져 있다. 1959년 미국에서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가 원작으로, 갱단에 쫓기는 신세가 된 재즈 뮤지션 ‘조’와 ‘제리’가 여장을 하고 여성 재즈 밴드에 입단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담았다.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인 만큼 극 속엔 재즈와 스윙 선율이 녹아 있다. 서로 다른 질감을 보여주는 무대 전환도 관람 포인트. 극의 초반부에선 시카고 갱단의 총격전이 벌어지는 어두운 차고가 긴장감을 높이고, 두 주인공이 도망쳐 온 마이애미 호텔과 해변에선 낙원 같은 무대가 펼쳐진다. 조(여장 시 조세핀) 역에는 배우 엄기준·이홍기·남우현·정택운, 제리(다프네) 역에는 김법래·김형묵·송원근이 출연한다. 슈가 역은 솔라·양서윤·유연정이 맡는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대공황기의 불안한 정서가 깊숙이 녹아 있다. ‘슈가’가 금주법 말기를 배경으로 펼쳐진 허구의 로맨틱 코미디를 발랄하게 그려냈다면, ‘보니 앤 클라이드’는 비슷한 시기 실존 범죄자 커플의 로맨스를 통해 어두웠던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배경은 1932년 미국 서부 텍사스.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카페 종업원 보니와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청년 클라이드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목숨을 건 여정에 함께 뛰어든다. 이들은 훔친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상점과 은행을 털고 살인을 저지르는 무법자였다. 하지만 시대가 더 혹독했던 탓일까. 이들이 은행을 털고 도망치는 모습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복수로 비치며 의적으로 미화됐다. 클라이드 역은 배우 조형균·윤현민·배나라, 보니 역은 옥주현·이봄소리·홍금비가 맡는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재즈, 팝 등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가 특유의 대중적이고 감미로운 멜로디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