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루미늄을 전혀 넣지 않은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던 국내 기업 A사는 지난 여름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미국 측 수입신고서에 적힌 제품 HS 코드가 '알루미늄 품목별 관세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어 기존 관세에 알루미늄 품목 관세 50%가 붙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 회사 내부에선 "이 세율이면 미국 수출을 접자"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관세 규정을 해석해 줄 전문가가 필요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A사가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은 산업통상부와 KOTRA가 운영한 '관세대응 119' 상담창구였다. A사는 심층컨설팅과 미국 세관(CBP) 사전심사(e?Ruling) 대행을 통해 상호관세 15% 상호관세만 받고 수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화 한 통에서 이어진 상담 몇 번이 수억 원의 손실을 막아낸 셈이다.

FTA만 맞추면 된다고? 비특혜 원산지의 함정
A사 뿐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상호관세(15%)와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관세(50%)를 부과하고 있다. 복잡해진 관세에 수출 기업들의 시름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통상당국은 상호·품목관세에는 기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기준이 아닌 '비특혜 원산지 기준'이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FTA 원산지 기준은 '협정 상대국 물품에 관세 혜택을 주기 위한 기준'으로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품목별 규정에 따라 수출 서류를 써왔다. 그런데 미국이 상호·품목관세, 반덤핑·상계관세, 정부조달 등 광범위한 무역정책에 활용 중인 비특혜 원산지 기준은 '실질적 변형'이 중심이다. 제조물품이 최종적으로 어떤 국가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별도로 종합 판단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전히 세부 규정이 촘촘하게 정리돼 있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크다.
특히 개별 대응이 어려운 수출 중소기업이 문제다. 지금까지 FTA 기준을 충족해 관세 혜택을 받았다 해도, 이제 새로운 관세를 피하려면 원산지 기준을 또다시 따져봐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한 셈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느 나라에서 어떤 공정을 수행했는지, 어떤 원재료를 조달했는지에 따라 관세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달라진 미국의 HS 코드 분류, 원산지 판정, 수입자·특송업체의 신고 실수까지 얽히면,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관세 폭탄을 맞기 십상이다.

'관세대응 119'로 모이는 기업들
대미 수출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정부의 만든 관세 대응 특별 창구에 기업 문의도 폭증하고 있다. 산업부와 관세청, KOTRA는 지난 2월 관세대응 119를 확대 개편한 이후 미국 관세정책 변화에 대한 기업 설명회를 100회 이상 열었다. 찾아가는 지역설명회, 주요 업종 설명회, 해외 현지 설명회 등 KOTRA가 진행한 설명회만 67회고, 관세청은 주요 업종 설명회 40여 회를 열고 품목별 대응책자도 발간하고 있다. 이중 관세대응 119는 실전 상담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부가 2월 신설한 창구에는 지난달 말까지 총 9400여 건의 1대 1 관세 상담이 접수됐다. 관세율·원산지 등 관세 확인 관련 문의가 6232건이고, 생산거점 이전(308건), 대체시장 발굴(545건) 같은 중장기 전략 문의도 많다. 단순 문의를 넘어 심층 상담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례도 496건에 이른다. 현장 종합상담지원실 대면 상담 185건, 미 세관의 사전 심사(CBP e?Ruling) 신청 지원한 사례도 143건 규모다. 이 밖에 국내 관세사와의 1대 1 컨설팅 96건, 미국 현지 전문가 화상상담이 72건 이뤄졌다.
정부는 관세 피해기업 전용 ‘관세대응 바우처’ 사업도 운영한다. 4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관세 피해를 정부가 지원하는 패키지형 바우처다. 현지 전문가를 연결시켜주고, 피해 분석과 생산거점 이전, 대체시장 발굴 같은 중장기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4800여 개 기업이 활용했다.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철강·알루미늄 함량 계산, 반박의견서 작성 무료 컨설팅도 약 90회 진행됐다.

관세 '공정하게' 내는 유형별 상담사례
관세대응 119 관계자는 "상담을 통해 관세를 아낀 사례가 많다"며 "관세율·HS 코드 오분류, 원산지 전략, 수입자의 오판단·실수 정정 등이 주된 상담 사례"라고 말했다. #사례1 미 관세 당국의 관세율·HS코드 오판단 수정
A사 사례는 관세율과 미 당국의 HS 코드 오판단을 수정한 사례다. 알루미늄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품목별 관세 리스트에 포함돼 50% 관세폭탄을 맞은 A사는 컨설팅에서 "파생상품 관세는 '알루미늄 함량 가치'에만 부과된다"는 점을 재확인받았다. 상담사들은 수출 송장에 '알루미늄 미함유 제품'이라는 사실을 명기 하도록 했고, 통관사에 이를 미국 과세 당국에 정확히 전달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안내했다. 이후 CBP 사전심사를 통해 '50%가 아닌 15% 상호관세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으면서, 실제 납부 세율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전선을 수출하던 국내 기업 B사도 품목별 관세 50% 대상인 줄 알았다가 관세대응 119를 통해 정확한 HS 코드와 세율을 안내받았다고, 결국 관세를 15%로 낮출 수 있었다.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B사는 향후 수출계약과 가격정책을 다시 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례2 중국산 아니라 한국산 ‘원산지 증명’이 가장 중요
‘한국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원산지 전략도 필수가 됐다. C사는 중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국내에서 전자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C사는 미국의 비특혜 원산지 기준에 따라 한국산 판정을 받기 위해 어떤 공정을 국내에서 수행해야 하는지 상담 창구에 조언을 구했다. 미국이 중국산에 대한 관세를 매기면 '관세폭탄'이 불가피해서다. 컨설팅 과정에서 C사는 제품의 형상과 용도, 공정 흐름을 세세히 분석해 어떤 핵심 자재를 한국에서 조달해야 ‘실질적 변형’ 기준에 부합하는지, 공정을 어디까지 국내로 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받았다. 현재 이 자문을 토대로 현재 세부 공정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사례3 특송 수출 시에도 ‘관세폭탄’ 우려
현지 수입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관세를 과도하게 부과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플라스틱 원재료를 미국에 수출하던 D사는 지금까지 한·미 FTA에 따라 기본세율 6.5%를 면제받고, 상호관세 15%만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입사 측이 “상호관세가 부과되면서 FTA 적용이 안 된다”며 6.5%를 다시 포함한 총 21.5% 관세를 내야한다고 통보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정상 맞는지 틀린지 판단이 어려웠다.
관세대응 119 담당 관세사들은 수입자가 보내온 이메일과 관련 서류를 검토해 "상호관세가 부과되더라도 여전히 FTA 기본세율 면제 대상"이라는 점을 미 당국의 규정에 근거해 정리했다. 이후 상호관세 15%만 적용하는 방식으로 수입사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기계설비를 미국에 수출하는 E사는 특송업체의 실수로 애를 먹었다. 긴급 수출을 특송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운송사가 철강·알루미늄 함량 자료를 확인하지 않은 채 FOB 가격(본선 인도가·수출사가 부담)으로 관세를 부담하는 것으로 미 당국에 신고한 것이다. 통관사와 잘 연락도 닫지 않아 시간만 흐르는 상황이 이어졌고, 회사는 이미 납부한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관세대응 119는 수입신고서(Entry Summary)를 조목조목 분석한 결과 미국 관세청 규정을 확인한 뒤 PSC(정정신고) 절차를 통해 잘못 납부한 부분을 돌려받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애로 전하면 협상 테이블로 간다", 항공부품 '무관세' 확정
정부의 관세 대응은 개별 기업 상담을 넘어 관세협상 전략과도 연결되고 있다. 최근 열린 산업부 장관 주재 업계 간담회에서 한 항공기 부품 업체 관계자는 "관세 급증으로 손익이 급격히 나빠졌고, 중소 협력업체 비중이 높은 산업 특성상 충격이 산업 전반으로 번질 우려도 크다"고 호소했다. 이미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선 관세대응 바우처, 물류비 지원 등이 이뤄졌지만, 업계의 요구는 '근본적인 관세 인하'인 것이다.산업부는 이 애로를 대미 관세협상 의제로 직접 반영, 결국 항공기 부품에 대한 무관세가 최종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 명시됐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X에 올린 글에서 '한국의 항공기 부품은 무관세'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대미 수출기업의 관세 환경이 매우 불확실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미국 관세 당국이 품목·상호관세가 부과 이후 규정 적용에 큰 혼선을 빚고 있어서다.
기업인들로선 수출 품목의 HS 코드에 따른 관세율이 불명확할 땐 먼저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기본 관세율 확인과 규정 문의는 온라인으로도 가능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부과되는 세율과 사이가 클 수 있다. 이때 미국 사전심사 신청 지원을 활용해 유권해석을 받아 두는 편이 안전하다는 게 통상당국의 설명이다.
원산지 기준 충족 여부가 관세 수준을 좌우하는 기업이라면 생산공정과 자재 조달 구조를 미리 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컨설팅을 통해 어떤 공정을 국내로 옮겨야 하는지, 어떤 핵심 자재를 국내 조달해야 미 원산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장기 로드맵을 짜야한다. 여러 국가에서 원부자재를 조달하거나 공정을 나눠 수행하는 기업일수록 이런 사전 점검의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이미 관세를 과다 납부했거나, 수입자가 규정을 잘못 이해해 높은 세율을 통보받은 경우엔 정정신고와 미 당국과의 협상이 핵심이다. 단독으로 규정 해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전문가와 함께 미 관세 규정·FTA 조항·비특혜 원산지 기준을 종합한 '논리 패키지'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상호관세·품목관세, 비특혜 원산지 기준은 앞으로도 기업들에게 만만치 않은 리스크다. 박정성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앞으로 미국 정부가 특정국의 우회수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원산지 검증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KOTRA와 무역협회, 업종별 협회 등과 함께 기업들에 대해 안내와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들도 수출 품목이 미국의 원산지기준에 부합하는지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