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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실, 35년 만의 대학로 외출..."돈 보고 하는 일 아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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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실, 35년 만의 대학로 외출..."돈 보고 하는 일 아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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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이경실이 대학로 무대로 돌아왔다. 1988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무렵 섰던 '아델만의 재판' 이후 무려 35년 만의 연극 복귀라고 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흐른 뒤, 그가 선택한 작품은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코믹 연극 '보잉보잉'의 2025년 판 '스페셜 보잉보잉'이다.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관객의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 들리는 소극장을 택한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했다. 무대 위에서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가정부 피옥희 역으로 분한 이경실을 만나, 그가 연극 무대로 돌아온 이유와 변화된 삶의 태도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보잉보잉'은 바람둥이 주인공 성기가 세 명의 스튜어디스와 동시에 연애를 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 작품이다. 20년 넘게 공연되며 누적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대학로의 대표적인 장수 연극이기도 하다. 이경실은 이 작품에서 세 여자의 방문 스케줄을 조정하며 주인공의 이중생활을 돕는,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는 가정부 피옥희 역을 맡았다. 극의 중심을 잡으면서도 코믹한 상황을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감초 역할이다.


    그는 이번 작품 선택의 배경에 대해 지인의 권유나 친분이 아닌, 오로지 '대본의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먼저 대본을 보내달라고 했다. 읽어보니 스피드 있고 탄탄함이 느껴져서 '괜찮다' 싶어 결정하게 된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심각한 연극보다는 코믹 장르를 좋아한다. 관객들이 재밌게 보고 호탕하게 웃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가진 의미나 거창한 예술성보다는, 관객과 호흡하며 즉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 본연의 매력에 끌렸다는 것이다.

    이경실은 그러면서 뮤지컬보다는 연극을, 그중에서도 관객의 반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소극장 연극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소극장 연극은 관객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 혼자만의 정신적 충족이 있다"며 연기 활동이 주는 내적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반응이 바로 오지만 여운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반면 드라마나 연극 연기는 내가 느끼는 내적 감동이 있고, 잔잔한 여운이 남죠. 예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파주댁 이야기를 대중들이 지금까지 하는 것처럼, 연기가 갖는 감동의 힘은 다른 거 같아요."

    연극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이경실 스스로도 "정신적 충족이 필요했다"는 것. 방송 활동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그가 굳이 고된 연습과 긴 공연 시간이 요구되는 연극 무대를 택한 것은, 오로지 연기에 대한 갈증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었다.


    35년 만에 돌아온 연습실 풍경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고 했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은 대부분 그의 딸, 아들뻘 되는 어린 후배들이다. 심지어 아들인 배우 손보승보다 어린 나이도 있었다. 이경실은 자칫 대선배인 자신이 후배들에게 어려움의 대상이 돼 극의 몰입을 방해할까 봐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날 어려워하지 않아야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요. 그래서 먹는 걸로 공략했죠.(웃음) 과일을 깎아가거나 팬들이 보내준 떡을 나눠 먹으며 분위기를 풀었어요. 호칭도 '선배님', '선생님' 말고 '누나',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고요. 나이가 제일 많지만 그걸 느끼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후배들의 다이어트나 건강 관리까지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는 대선배의 권위보다는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극 중에서 이경실이 연기하는 피옥희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실제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대학에 오기 전까지 군산에서 성장한 그에게 "고향 말투를 쓰는 거냐"고 묻자, "이건 미디어 사투리"라고 바로잡았다.

    이경실은 "그 지역 사람들이 보면 '가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연기에 있어서 사투리는 듣는 사람이 편해야 한다"며 "너무 오리지널로 하면 관객이 못 알아듣는다"고 설명했다. 오랜 방송 경력에서 우러나온 노련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이경실은 연기의 기본인 발성과 발음을 거듭 강조했다. "요즘은 TV에 자막이 있어서 다행이지, 발음이 부정확하면 내용을 모를 때가 있다"며 "배우의 기본은 정확한 발음이다. 특히 연극은 맨 뒤의 관객까지 다 알아들어야 하므로 더 중요하다"며 후배들에게도 이 점을 늘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경실은 '호탕함', '강함', '기 센 언니' 등의 이미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방송 콘셉트를 나의 실제 성격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강하게 하는 게 먹히던 시절이라 미움받더라도 강하게 방송을 했어요. 저도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게 내 인간성인 줄 알더라고요. 드라마에 악역이 필요하듯 방송을 위한 설정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나 최근 유튜브 채널 방송을 하는데, 원래 제 성격대로 하니 댓글 반응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댓글 **80~90%**가 칭찬이더라고요. 나는 변함이 없는데 토크의 흐름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이제야 나의 진가를 봐주는 것 같아요. 욕을 안 먹고 좋은 말만 들으니 오히려 '착한 척해야 하나' 싶어 어색하기도 하고요.(웃음)"

    실제로 그는 대중의 이미지와 달리 내향적인 성향이라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이고 셀 줄 아는데, 몇 년 동안 나를 돌아보니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더라. 집순이다"며 "MBTI도 ISFJ다"라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연극 연습이나 공연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반찬을 만들고 찌개를 끓이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청소를 도맡아 하고, 딸은 빨래를 담당하는 등 가족들이 서로 돕는 화목한 가정 안에서 그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

    이경실에게 이번 연극 '보잉보잉'은 단순한 작품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연기를 공부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드라마나 영화 역시 그에게는 배움의 과정이며, 자신만의 내적 충족을 채워가는 시간이다. "이 작품을 끝내고 얻고 싶은 건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제 연기를 편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후배들이 무대 위에서 튈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내가 잘 받쳐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 내내 이경실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묻어나는 연륜, 강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여유, 그리고 후배들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쁨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배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땀 흘리며 관객과 호흡하는 '배우' 이경실의 도전은, 그가 걸어온 35년의 방송 인생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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