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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내수 안주·상장의존…'3대 한국병'이 K벤처 성장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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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내수 안주·상장의존…'3대 한국병'이 K벤처 성장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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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삐삐(무선호출기) 업체로 출발해 한때 국내 휴대폰 2위 제조사로 성장한 팬택은 한국 벤처 신화의 상징과도 같다. 피처폰으로 연매출 2조원을 올리며 한국 대표 수출 기업으로 발돋움했지만 스마트폰 시장 적응에 실패해 매출의 95%를 국내에 의존하는 내수 기업으로 전락했다. 두 차례 워크아웃 끝에 2015년 매각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2년 설립돼 국내 두 번째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주목받은 옐로모바일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40여 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벤처연합’ 모델로 기업가치가 4조원까지 치솟았다가 인수합병(M&A) 전략 부재와 기업공개(IPO) 실패 등이 겹치며 지난해 폐업 절차를 밟았다.


    팬택과 옐로모바일의 몰락은 개별 기업의 실패를 넘어 한국 벤처 생태계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국 벤처 원년인 1995년 이후 30년간 14만 개에 육박하는 벤처기업이 탄생했지만 탄탄한 대기업으로 살아남은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속에 상장과 내수만 바라보다가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런 ‘3대 한국병’을 고치지 못하면 혁신 없이 명멸하는 K벤처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대기업 92곳 중 벤처출신은 11개 뿐
    30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92개 가운데 벤처기업에서 시작된 곳은 11개다. 1998년 벤처확인제도 시행 이후 1회 이상 벤처기업 확인을 받은 13만6000개 가운데 대기업이 될 확률은 0.00008%에 불과한 셈이다. 미국의 시가총액 순위 10대 기업 가운데 8개가 벤처 출신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 벤처의 ‘성장 사다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수 시장에 집중한 것이 한국 벤처기업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11개 기업 중 수출로 먹고사는 제조업에 속한 곳은 셀트리온과 에코프로뿐이다. 2000년 전후로 탄생한 2세대 벤처기업 대표격인 카카오와 네이버는 내수 플랫폼 기업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쿠팡도 매출의 80% 이상을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다. 토스, 컬리, 무신사 등 대기업을 꿈꾸는 유니콘기업도 대부분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성장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에서 시작한 기업들이 성장에 한계가 있는 내수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소비자에게 의존하는 사업모델이 많다 보니 한때 국민 SNS로 통한 싸이월드처럼 내수 시장을 장악하더라도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기업 성장하면 무더기 규제
    기업이 성장할수록 벌을 주는 ‘규모별 차등 규제’도 벤처 성장을 막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주요국 기업 규모별 규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기업 자산·매출, 근로자 수에 따라 달라지는 계단식 규제를 343개나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영국, 일본은 상장 여부와 시장 지배력 등 ‘법적 지위’를 기준으로 규제를 설계하지만 한국은 기업 규모에 따라 규제를 늘리고 있다는 게 대한상의 평가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국내 조달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연구개발(R&D) 정부 지원이 끊기는 게 계단식 규제의 대표적 예다. 상시근로자(50명, 300명)와 자산총액(5000억원, 2조원, 5조원)이 일정 기준을 넘을 때마다 지정감사, 공정거래 의무 등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형태도 한국만의 독특한 규제다.


    올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뀌는 지능형 CCTV 업체 쿠도커뮤니케이션도 한국식 규제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이 회사 김용식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성장할 때 벌칙보다는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은 쉽지만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구조도 벤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선 벤처가 인수되면 실패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며 “전략적 M&A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벤처 투자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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