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같은해 7월 반도체 식각·노광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고순도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용 기판과 같은 디스플레이 소재(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한국 수출을 통제한 게 발단이 됐다. 해당 소재들은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품목으로 국내 기업들 타격이 불가피했다.
이 사례는 공급망이 편중된 상황을 이용해 한국을 공격한 첫 번째 시도로 꼽힌다. '전략물자 무기화'를 피부로 경험하면서 업계도 정부도 부랴부랴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데 열을 올렸다.
정부, 무역안보 정책 발굴 착수…반도체 등 공급망 점검
29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공급망 리스크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기초작업에 착수했다. 국내 생산품목·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경쟁력과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개별 사안마다 연구가 이뤄지긴 했지만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인 실태 파악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첫 시도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것은 일본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최근까지 주요 물자 수출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무역전쟁을 벌인 점도 고려한 조치다. 공급망 편중 현상을 이용한 무역전쟁이 일상화된 만큼 시나리오별 무역안보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인공지능(AI) 칩 수출을 통제했고 중국은 희토류·배터리·인조 다이아몬드 수출 통제를 단행한 바 있다.
산업부는 "최근 주요국은 자국의 주요 생산품목에 대해 수출통제 및 기술보호 제도를 적용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줬다"며 "무역안보 현안 상시화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 산업의 기여도에 따른 중·장기적 대응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최근 5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했던 국내 생산제품의 공급망 실태를 먼저 파악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이차전지·원자력·스마트폰·가전 등의 제품을 대상으로 전 세계·주요국 공급망 기여도를 조사한다. 특정 제품 내 핵심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 해당 소재의 생산지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골자다.
또 해당 품목과 국가핵심기술, 전략물자 개발·생산 기술 등의 공통점·차이점을 비교 분석한다. 완제품·구성품, 부속품,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생산·사용 기술 등을 구분해 종합적인 실태를 파악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토대로 한 무역안보 정책, 시나리오별 장·단점, 기대효과를 제시한다는 목표다.
日, 희토류 공급망 확보 주목…인태 지역 협력 전략 모색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할 협력 전략을 찾는 작업도 병행한다.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국들과의 공급망 협력 전략, 연계 방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대상국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 등 4개국이다. 산업부는 전자부품·배터리 소재·화학 소재·자동차부품 등 주요 산업군별 공급망 구조를 분석하고 각국 관련 정책을 파악할 계획이다. 경쟁국(미국·중국·일본 등)의 인도·태평양 지역 공급망 전략도 비교 분석한다. 산업부가 염두에 둔 협력 모델은 일본의 '호주 라이너스 프로젝트'다. 일본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JOGMEC), 종합상사 소지츠는 앞서 세계 2위 희토류 생산기업인 호주 라이너스레어어스(LYC)에 2억호주달러를 투자했다. LYC가 생산하는 희토류(디스프로슘·테르븀) 중 최대 65%를 일본이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해 공급망을 안정화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통제는) 공급망 편중을 이용해 우리나라를 공격한 첫 번째 시도였고 미국은 반도체 장비·AI칩을, 중국은 희토류·이차전지를 수출 통제해 새로운 공급망 리스크를 불러왔다"며 "전 세계의 어떤 특정 공급망 루트가 지배적일 때 그에 대해 먼저 현황을 파악하고 이후 그다음 파악된 현황에 대해선 사전에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연구하기 위해 조사하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