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남양유업을 인수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에 660억 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분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번복한 탓에 매각이 지연되면서 남양유업 기업가치가 하락한 데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남인수 부장판사)는 27일 “홍 전 회장은 원고(한앤코)에게 660억 원 상당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면서 “이 중 소극적 손해에 해당하는 487억 원에 대해선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2022년 11월 소 제기 이후 3년 만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재판부가 소극적 손해로 판단한 부분은 “홍 전 회장의 계약 이행 지체가 없었더라면 한앤코가 주식매매계약(SPA)상 매매대금을 운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상실한 점”이다. 재판부는 최소 상사법정이율 상당의 손해만 인정하고, 이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고 봤다.
적극적 손해로는 “홍 전 회장의 계약 이행 지체로 오너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고, 기업가치가 감소한 부분”이 적시됐다.
한앤코는 홍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남양유업 지분 53.08%를 3107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2021년 5월 홍 전 회장과 SPA를 체결했다. 그러나 홍 전 회장은 약 두 달 뒤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 불참하며 계약을 뒤집었고, 같은 해 9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한앤코는 홍 전 회장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남양유업 인수가 늦어진 데 대해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인수가 33개월가량 지연되는 동안 남양유업의 적자가 누적돼 손해를 봤다는 이유에서다.
남양유업은 2021년(-597억 원), 2022년(-783억 원), 2023년(-663억 원) 내리 영업손실을 내다 한앤코에 인수된 이후인 작년 3분기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남양유업 경영권은 한앤코가 2021년 8월 홍 전 회장 일가를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에서 작년 1월 최종 승소하며 한앤코로 넘어간 상태다.
한앤코가 애초 요구한 손해배상액은 500억 원이다. 그러나 올해 5월 배상액을 936억 원까지 늘리며 청구 취지를 대폭 확장했다. 이 중 약 70%가 손해로 인정된 셈이다.
한앤코는 홍 전 회장의 배우자인 이운경 전 남양유업 고문과 손자 홍모씨에 대해서도 배상을 청구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소송은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일방의 단순 변심에 따른 계약 이행 지연으로 발생한 손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인정할지에 대한 첫 법원 판단이라는 의미가 있다. 홍 전 회장 측이 항소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이번 판결에서 정립된 손해액의 산정 방식과 근거는 향후 유사한 M&A 계약 분쟁에서 준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