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7박10일의 중동·아프리카 방문 일정을 마치고 26일 귀국한다. 지난 6월 취임 12일 만에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이달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5개월간 다섯 차례 다자외교 무대를 밟았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의장국 대통령 자격으로 주재했다.
이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12·3 비상계엄’ 사태로 반년 넘게 실종된 정상 외교를 정상화하고 방위산업, 원전, 반도체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산업 영역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각국 정상과의 회동을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는 게 내년 과제가 될 전망이다.

◇‘정상외교’ 완전 복원
이 대통령은 취임 후 G7 정상회의, 유엔총회(미국·9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말레이시아·10월), APEC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등 5개 다자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다자 외교 데뷔 무대인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서는 일본 영국 인도 등 9개국(유럽연합 포함)과 릴레이 정상회담을 통해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외교의 복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시바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한국과 일본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라며 셔틀외교 복원을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 대통령이 반일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가 컸는데 이를 불식시켰다는 평가다.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는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아 회의를 주재했다. 기조연설을 통해 이재명 정부 대북 구상인 ‘E(교류)·N(관계 정상화)·D(비핵화)’ 전략을 처음 국제사회에 공개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는 의장국으로서 ‘경주 선언’ 채택을 이끌어낸 점도 큰 성과로 꼽힌다.
남아공 G20 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 사우스를 상대로 한 외교를 본격화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연대해 외교 영토를 넓힐 초석을 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산·원전·반도체 ‘세일즈 외교’
눈에 보이는 경제 성과도 이끌어냈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 국내 공급을 확정한 게 APEC 정상회의 때다. 품귀 현상을 보이는 GPU를 특정 국가에 대규모 공급하기로 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개별 기업 노력이 가장 컸지만 ‘AI 허브 구상’이라는 정부의 전략적 방향성이 명확하고, 무엇보다 대통령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대해 기업들에 감사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총회 기간 뉴욕에서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을 만나 한국에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 구축 협력 약속을 받아냈다.대규모 방산·원전 수출 기반을 마련한 건 이번 중동·아프리카 순방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해 미래 첨단 분야 양해각서(MOU) 7건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한·UAE 전략적 AI 협력 프레임워크’ 구성이 핵심으로 꼽힌다. 이는 5GW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인 ‘UAE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의 참여 가능성을 높였다.
방산은 단순 무기체계 수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공동 개발, 현지 생산, 제3국 공동 수출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유형의 방산 협력 모델을 마련했다. UAE뿐만 아니라 호주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등 취임 후 한 거의 모든 양자 회담에서 ‘K방산’ 경쟁력을 강조하며 협력 강화 논의를 했다.
방산·원전 등 주력 분야 협력 약속을 성과로 만들어내야 하는 건 과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수출 가능성이 높아진 건 맞지만 수주로 이어지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했다. 상대국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자금을 장기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이어서 최근 맺은 MOU 중 한두 개만 수주로 이어져도 ‘대성공’이라는 평가다.
앙카라=한재영 기자/김형규 기자 jy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