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거품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주요 투자자에게 발송했다. 올 3분기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음에도 시장의 우려가 끊이질 않자 마이클 버리 등 공매도 세력에 정면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3분기 실적 발표 직후 임직원 간담회에서 “우리가 나쁜 실적을 냈으면 AI버블의 증거가 되는 것이고, 호실적을 내니 AI버블을 조장한다고 한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반박문은 지난 20일 열린 황 CEO의 직원 간담회 직후 전 세계 투자자에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는 비공개 행사로 열린 직원 간담회에서 “시장이 우리의 놀라운 분기 실적을 기뻐해 주지 않는다”며 “우리가 조금이라도 틀렸거나, 조금만 삐걱했으면 전 세계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매출이 570억1000만달러(83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하고, 순이익(319억1000만달러)이 60% 급증한 3분기 실적(8~10월 자체 회계연도 기준)을 지난 19일 발표했다.
엔비디아가 4분기(11월~내년 1월) 매출도 시장 전망치(616억달러)를 넘어서는 650억달러로 제시했으나,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증가 등이 부각되며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투자자에 보낸 7페이지 분량 자료에서 엔비디아는 영화 ‘빅쇼트’ 주인공으로 알려진 마이클 버리 등이 제기하는 거품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AI버블론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매출채권 회전 일수 증가, 재고 자산 증가, 엔비디아가 투자한 기업이 다시 엔비디아 제품을 사들이는 ‘순환금융’이 대표적 사례다.
3분기 재고가 전 분기 대비 32% 증가했다는 주장에 대해 엔비디아는 신제품(블랙웰) 출시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재고를 비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수요가 둔화하거나 고객으로부터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에 제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신제품을 비축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4분기 매출 가이던스 650억달러를 맞추려면 재고 확충이 필수적”이라며 “재고 증가는 고객의 지불 능력과 무관하고 엔비디아는 엄격한 신용 평가를 거쳐 제품을 출하한다”고 설명했다.
매출채권 회전일수가 높아진 것과 관련해서도 “수금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매출채권은 상품을 판매했지만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 채권이다. 매출 채권 증가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주요 고객사가 돈을 제때 지불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신호 중 하나로, AI거품론의 대표적 근거로 꼽힌다. 이와 관련 엔비디아는 “매출 채권 회전일수가 53일로 과거 평균(52일)은 물론 전분기(54일)보다 감소했고, 연체된 매출채권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버리가 주장하는 ‘순환 금융’ 구조에 대해서도 “매출의 극히 일부(3~7%)만 스타트업 투자에서 나온다”고 했다. 순환 금융이란 엔비디아가 투자한 기업이 엔비디아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다시 엔비디아 칩을 매입하는 사업 구조를 의미한다. 예컨대 챗GPT 운영사 오픈AI가 엔비디아로부터 1000억 달러(약 147조 원)를 투자받아 엔비디아 칩 수백만장을 구입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버리는 실적 발표 다음 날인 지난 20일 자신의 X에 “미래에 이것을 선순환이 아닌 사기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AI버블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황 CEO는 직원들에게 “시장의 반응은 신경 쓰지 말고 일에 집중해라(stay focused)”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임직원이 자사주를 15% 할인된 가격이 구매할 수 있는 임직원주식구매제도(ESPP)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12월말 14달러대였던 엔비디아 주가는 2024년 12월 말 134달러로 10배가량 오른 이후 올해 들어 상승세가 둔화한 상태다. 지난달 31일 202달러로 최고점을 경신한 이후 21일 종가 기준 178.88달러까지 하락했다.
‘내부자 매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페이팔 창업자 피터틸이 운영하는 헤지펀드 틸매크로는 최근 엔비디아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그들(손정의, 피터틸)은 회사 내부자가 아니며 개인의 투자 결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엔비디아에 대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가 임박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어떠한 조사 통보도 받은 바 없으며 미국 금융당국의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했다.
엔비디아가 임직원에게 자사주를 많이 지급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직원들이 주가 상승으로 이득을 본 것이지, 애초 과도한 주식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버리 등 공매도 세력은 엔비디아가 주식 신규 발행을 통한 임직원 보상을 늘리면서 자사주 매입 효과가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2018년 자사주를 평균 주당 51달러에 매입해 주당순이익(EPS)을 5% 높이고 2000억달러 이상의 시총 증대 효과를 거뒀다”며 자사주 매입 성과를 강조했다.
MS, 구글, 아마존, 메타 등 주요 고객사들이 엔비디아 장비의 감가상각 연수를 축소해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엔비디아는 “구글, 아마존, 메타 등 주요 고객사들은 장비를 4~6년에 걸쳐 상각하고 있으며, 이는 동종업계 장비 감가상각 연수(2~7년)와 일치한다”고 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