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금융투자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 상승기를 보냈다. 지난 1분기 이후 우상향 곡선을 그린 뉴욕 증시와 새 정부의 코스피 5000 시대 공약 이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국내 증시 등 국내외에서 투자 열기가 상당했다. 투자자들이 주도주를 찾아 헤매는 동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바람 속에서도 진가를 발휘한 상품이 적지 않았다. 올해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준 상품과 내년도 ESG 투자 전망을 살펴봤다.
올해 ESG 수익률 킹은
90.92%. 올해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한 ESG 상품의 연초 이후 수익률(11월 24일 기준)이다. 수익률 1위 펀드는 KBESG성장리더스로 국내 77개 ESG 관련 펀드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냈다. 이 펀드는 기업별 ESG 항목 평가를 통해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에 선별 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스타일에 관계없이 ESG 평가 등급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구성하는 게 KB자산운용 설명이다. 실제 국내 대표 ESG 기업인 SK하이닉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양식품, KB금융, 효성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NH아문디100년그린코리아펀드도 올해 87.0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회사 관계자는 “ESG 관점을 반영해 국내 주식에 60% 이상 투자한다”며 “ESG 관련 비재무적 요인과 기업가치로 이어지는 재무적 요소(성장성, 수익성, 안정성)를 동시에 고려해 지속가능하며 성장성 있는 기업에 투자, 수익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펀드가 보유한 상위 종목으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이 있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25년 한국 증시를 뜨겁게 달군 ESG 이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향한 정부의 의지가 담긴 ‘단계적 상법개정’이었다”며 “아직 남아 있는 과제가 있지만, 2025년을 기점으로 상장사의 거버넌스 이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투자자들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 없으며, 증시 랠리를 이끄는 모멘텀 역할을 했다”고 국내 투자에 대해 평가했다.
ESG 투자라고 해서 모두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슈로더글로벌지속가능성장펀드의 경우 연초 이후 수익률이 7.39%에 불과하다. 1위 KBESG성장리더스 펀드에 비해 80% 넘는 수익률 차이가 난다. 이 밖에도 삼성글로벌배당성장주 펀드(8.04%), 미래에셋글로벌혁신기업ESG 펀드(10.09%) 등 글로벌 ESG 관련 투자에 나선 상품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익을 냈다. 삼성글로벌배당성장주 펀드의 경우 해외 주식 비중이 88%인 상품으로 미국 약국체인 CVS헬스, 통신사 버라이즌, 리츠 BXP 등이 포트폴리오 상단에 포진해 있다.
손서원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유럽 중심으로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친환경 신규 규제 도입 동력이 부진한 가운데 글로벌 녹색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전환 리스크와 홍수 및 가뭄 등 물리적 리스크 노출이 큰 신흥국은 신규 탄소감축 관련 규제와 인센티브를 마련하면서 기후 리더십을 강화 중”이라고 평가했다.

2026년 ESG 트렌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ESG 규제가 시행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기후 공시를 비롯해 중국 ESG 공시 의무 및 배출권 거래제 적용 확대,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 및 탄소배출권 무상 할당 비율 축소 시작, 일본 배출권거래제도 의무 등이다. ESG 관련 주요국 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둔화된 ESG 투자는 일부 회복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손서원 연구원은 “ESG 정책 심리는 지역별로 다르지만, 신흥국은 신규 규제 도입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은 정책 불확실성으로 ESG 투자 위축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연구원은 “유럽은 탄소감축 목표를 높이며 친환경 정책 방향성은 유지하지만 규제 완화 압력이 혼재한다”며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은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저탄소 전환 정책과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고 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규제 덕에 ESG 투자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도 내비쳤다. 그는 “주요국의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목표 상향, 탄소배출량을 바탕으로 한 보호무역주의, 미국 캘리포니아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 적용 등으로 위축된 ESG 투자 회복이 기대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올해에 이어 거버넌스 모멘텀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나예 연구원은 “2025년 한국 증시의 랠리를 이끈 ‘거버넌스 모멘텀’은 2026년에도 지속되며 상장사 정성평가 기준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업 거버넌스 개선의 도화선이 된 상법개정 효과는 이미 인적분할 계획,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 계획 철회 결정 등으로 확인했다”며 “2026년엔 현재진행형인 자사주 소각에 관한 상법개정 방향, 도래할 개정상법 시행에 대응하기 위한 상장사의 이사회 재편 노력, 그리고 상속증여세 개편 논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26년은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계기로 상장사 ESG 정보의 시장 영향력이 확대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외적 요인의 영향이 컸던 우리나라의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에 관한 논의 분위기가 과거와는 다르게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내부 이해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의 ESG 정보를 담은 공시 규정이 강화되고 있다. 2026년부터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공시 의무가 확대되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비롯해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주식 보고서 공시 의무화, 중대재해 발생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 시 당일 공시 등이 대표적이다.
박재원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