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1일 11:4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자사주 의무소각 법안 통과를 앞두고 중소·중견기업 사이에서 자사주를 서로 넘겨주는 ‘맞교환’이 잇따르고 있다. 소각이 불가피해지기 전에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겉으로는 사업 협력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영권 안전판을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구영테크와 삼보모터스는 지난 20일 서로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구영테크는 삼보모터스에 자사주 4.84% 전량을 팔고, 삼보모터스는 구영테크에 자사주 2.83%전량을 넘겼다. 거래 규모는 26억~28억원이다.
자동차 부품사인 두 회사는 양사의 전략적 제휴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서는 자사주 의무 소각 전에 선제적으로 대비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같은 날 극동유화도 hy(옛 한국야쿠르트)에 자사주 2.58%(29억원)를 매각했다. 산업용 윤활유 기업인 극동유화와 식음료 기업인 hy의 사업적 연관성은 크지 않다.
연결고리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가 꼽힌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극동유화의 3대 주주(8.75%)다. 장선우 극동유화 대표는 조 회장과 친분이 깊다. hy 윤호중 회장 역시 조 회장의 오랜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 당시 극동유화와 hy는 모두 조 회장 측 우군으로 분류됐다. 이번 자사주 거래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완구 제조사 오로라월드도 지난 10일 대교, 동인기연과 각각 자사주를 맞바꿨다. 대교와는 약 45억원, 동인기연과는 17억원 규모다. 사업 협력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학습지 기업·아웃도어 제조사와 연관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밖에 지난달 경방과 일신방직(거래액 약 75억원), 이달 초 삼진제약과 일성아이에스(79억원) 등도 자사주 교환을 실행했다.
자사주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을 때는 의결권이 없다. 다만 제3자에게 넘으면 의결권이 살아난다. 이 때문에 맞교환은 경영권이 위협받는 기업에겐 ‘확실한 우군 확보’가 되고 직접적인 위기가 없는 기업에게도 장기적으로 활용할 카드를 쥐게 된다.
자사주 의무소각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연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의무소각이 시행되더라도 유예기간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 기간 동안 소각이 어렵거나 실제 처분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이 우군 네트워크를 통한 자사주 거래를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