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에도 지난 6개월간 무려 60% 이상 상승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저평가받던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실물 경제 또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실질 성장률이 1.2%로 집계돼 지난 8월 한은의 예상치를 웃도는 등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 분기 대비 건설투자가 0.1% 줄었는데도 민간소비가 1.3%, 설비투자가 2.4% 반등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은 경제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최근 주식시장 호황을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금리 인하 기대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의 수혜 전망, 그리고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정책 기대에 기인한 바 크다. 물론 주식은 선행지표인 만큼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로 지수가 오르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기대가 현실화하지 않을 경우에 관한 대안도 침착하게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 비중이 큰 국민연금의 높은 수익률에 고무돼 기금 고갈 시기를 두고 낙관론이 난무하는 상황을 보면 애써 마련한 연금 개혁의 추진력이 약해질까 우려스럽다.
과거 202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전 세계적 유동성 공급 속에서 코스피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300선을 돌파했지만, 하반기 들어 글로벌 공급망 마비와 미국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외국인 자금 이탈,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상승세가 꺾이며 주요국 증시 중 최하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 주가 상승을 이끄는 금리 인하 기대와 반도체산업 업황은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만약 금리 인하가 지연되거나 반도체 경기가 예상만큼 개선되지 않는다면 외국인 자금은 빠르게 이탈할 수 있다. 기대가 꺾일 때 과열된 시장은 실물보다 훨씬 빠르게 식는다. 특히 약달러 기조 속에서도 계속해서 환율이 상승하는 현재 상황은 이런 대외 불확실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주가 상승을 실물경제로 연결하는 전달 메커니즘이다. 기업의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주가 상승은 숫자상의 착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정책당국은 금융시장 활황을 단순한 경기 회복 신호로 오판하기보다 이를 실질 성장의 마중물로 삼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중견기업과 혁신산업 대출 여력을 확대하고, 정부는 세제·규제 측면에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투자 의사결정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이다. 세제, 규제, 노동정책을 일관된 방향으로 설계할 때 비로소 기업의 장기 투자가 가능해진다.
코스피지수의 고공행진은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상승 열기가 생산과 고용의 온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번 랠리는 또 한 번의 ‘유동성 잔치’로 끝날 수 있다. 이제는 숫자의 상승보다 내용의 회복이 필요하고, 시장의 기대보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더 절실한 때다.
코스피지수발 훈풍을 실물경제의 체감 온도 상승으로 이끌어 내는 일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로 세우기 위한 출발점이다. 금융시장과 실제 경제활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성장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반드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