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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집을 고치니, 마음을 회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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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집을 고치니, 마음을 회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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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8월 8일, 서울을 덮친 기록적 폭우는 반지하에 살던 네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영화 ‘기생충’의 장면이 현실이 된 그날, 나는 중랑천으로 달려가 현장을 통제하며 밤새 상황을 지켜봤다. 성동구는 큰 피해를 피했지만 기후위기의 시대가 완전히 다른 준비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기축 반지하였다. 재개발 없이는 사라지지 않는 이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낡아갔고, 그 틈으로 위험이 스며들었다. 2022년, 반지하 6321가구를 전수조사했다. 침수, 환기, 구조 등을 점검해 위험등급을 매기고 가장 위험한 가구부터 이주를 지원했다. 물막이판, 침수경보기, 환풍기, 방범창 등 필요한 시설을 2000가구 이상에 설치했다.


    일회성 지원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거의 ‘질’을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위험을 수치로 평가하는 ‘위험거처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침수, 온열, 화재, 낙상 등 30개 요소를 정량화해 주택을 평가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이 기준은 곧바로 삶을 바꾸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연탄난방 가구에는 가스관을 넣어 밤새 연탄을 갈던 생활을 끝냈고, 옥탑방에는 냉난방 꾸러미를 전달하고 에어컨을 설치했다. 폭염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르신이 “처음으로 밤새 깨지 않고 잤다”고 했을 때 나는 정책의 진짜 의미를 실감했다. 지금까지 4416가구에 물막이판부터 어르신 낙상방지 집수리까지 맞춤형 지원을 이어왔다.


    이런 시도는 서울 전역으로 확산했고 위험거처 조례는 법제처 우수 조례로 선정됐다. 2024년부터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반지하, 옥탑방이 최초로 포함되며 국가적 관리 기반도 마련됐다. 또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주거기본법 개정 논의도 본격화하며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열린 주거정책포럼 연구에 따르면 어르신 낙상방지 홈케어 참여자의 77.6%가 집수리 이후 주거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답했다. 위험거처 개선사업이 주민의 일상과 인식을 바꿔 지역 자부심과 애착도를 1.5배 끌어올렸으며, 주거 스트레스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주거정책이 단순한 집수리를 넘어 안전과 심리, 공동체 의식까지 함께 개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위험한 주택을 직접 조사·판정하고 조치할 수 있는 국가적 기준과 법적 권한이 필요하다. 영국과 미국처럼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지방정부가 적극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해답보다 현장에서 배우며 진화하는 정책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 본래 방공호였던 반지하를 건강하고 안전한 주거로 바꾸는 일, 그 변화가 한국 주거정책의 새로운 기준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집이 더 이상 누구의 삶도 위협하지 않는 날까지 계속 나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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