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필하모닉엔 올해 한국에서 반길 만한 소식이 있었다. 지난 9월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해나 조가 정식 단원으로 임명된 것. 1842년 창단해 183년 역사를 자랑하는 빈 필에서 나온 첫 한국계 단원 임명 소식이었다. 19~20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앞두고 그에게 내부에서 보는 악단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지난 17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만난 해나 조는 “빈 필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함께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화려함 뒤엔 1년에 300번 넘는 공연이
해나 조의 한국 이름은 조수진. 1994년생인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건 고작 두 살 때였다. 생일에 부모님이 선물로 준 16분의 1 크기 바이올린을 갖고 놀면서 음악 인생의 막이 열렸다고.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그의 어머니도 바이올린 연습을 지원했다. “세 살부터 다니던 유치원 위층에 바이올린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1층 유치원이 끝나면 2층에 올라가 바이올린을 켰죠.”12세엔 미국에서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데뷔한 뒤 솔로이스트로 활동했다. 혼자 연주할수록 정통 클래식 음악을 대형 악단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도 커졌다. 2019년 해나 조는 빈 필하모닉 아카데미에 입단 원서를 내 합격한다. “빈 필은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음악의 원조와 같은 곳이잖아요. 빈 필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브루크너, 슈만, 브람스 등의 레퍼토리를 계속 하면 음악가로서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봤죠.”
정식 단원이 되기까진 몇 번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빈 필하모닉 아카데미에서 연주 경험을 쌓은 뒤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고 최소 2년은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단원 겸 빈 필의 수습 단원으로 연주해야 정식 단원 투표를 거칠 기회가 주어진다. “처음엔 빈 필에서 화려한 무대와 함께하는 생활을 생각했어요. 실제로 본 악단에선 단원들이 엄청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어요. 저도 주말엔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빈 필의 공연을 오가며 하루에 연주를 두 번씩 하곤 했어요. 한 주에 7~8번, 1년에 300번 이상 무대에 오르는 거죠.”
◇“내년에 한국 활동 더 늘리고파”
해나 조는 지난해 11월 단원 투표로 정단원이 될 기회를 얻었다. 올 9월 최종 승인이 나왔다. 악단에서 제2 바이올린을 맡으면서 다른 악기들의 연주에 재빠르게 반응해 순간적으로 템포를 맞추는 역량이 늘었다. 음색도 미국에서 활동할 때와는 달라졌다. 해나 조는 “활이 현에 닿을 때 미국에선 ‘큭’ 소리가 나도 괜찮았지만 빈 필에선 튀는 소리가 안 나게끔 활을 ‘스윽’ 그어서 최대한 동그랗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활동도 계속하면서 연주 환경에 맞추는 유연성도 늘었다.협연자 없이 이번 내한 공연을 이끌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해나 조가 빈 필에서 합을 가장 많이 맞춰본 지휘자다. 해나 조가 보기에 그는 “악단에 많은 믿음을 주는 지휘자”다. 악단이 알아서 연주를 풀어가게끔 단원들에게 충분한 여백을 준다고.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태어난 해나 조이기에 더 각별하다. 그의 가족은 미국에 거주하지만 양가 조부모를 비롯한 친척들은 한국에 산다. 그의 할머니도 이번 내한 공연을 관람한다고. 해나 조는 “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오면서 본 한강의 가을도 아름다웠다”며 이 정취에 어울릴 만한 작품으로 슈베르트 현악5중주 다장조를 추천했다.
내년엔 한국 활동을 늘리려고 한다. 봄에 한국으로 들어와 마스터클래스를 열거나 리사이틀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진지한 음악가로서 앞으로의 여정을 계속하고 싶어요. 한국적인 열정, 미국적인 에너지, 빈의 우아함을 한데 전하는 연주로 관객분들의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