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마러라고 합의와 같은 구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벨기에 브뤼셀의 대표 싱크탱크인 ‘브뤼겔’ 공동 창업자인 니콜라 베론 브뤼겔 선임연구원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플라자 합의 같은 국제 통화 시스템을 구상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정부 초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맡았다가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회 구성원으로 지난 9월 임명된 스티븐 마이런 이사는 임명 전 발표한 ‘마이런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의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동맹국과 함께 달러가치를 약세로 돌리기 위한 ‘마러라고 합의’ 구상을 제시했다.
국제금융 및 은행시스템 전문가인 베론 연구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 구상이 “현재로선 (트럼프 정부의) 주요 의제가 아니다”고 딱 잘랐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후 이런 조치 없이도 이미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2002년 브뤼겔 설립을 함께 한 베론 연구원은 2009년부터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선임 연구원도 겸하고 있다. 2010년대 초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하는 ‘은행동맹’ 구상을 주도했던 EU 통합주의자다.
▶마러라고 합의 구상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일단, 마이런 이사 스스로 이 보고서가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보고서가 발표된 후 이미 달러는 상당히 약세를 보였다. 더 이상 그가 추가로 달러를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플라자 합의의 전례가 있지 않은지.
“달러를 약세로 돌리기 위한 플라자 합의(1985년)나 과도한 가치하락을 저지하기 위한 루브르 합의(1987년) 같은 국제 통화 시스템을 구상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다. 19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기 때문에, 여러 국가가 같은 내용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될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그런 구상을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조짐이나 발표도 본 적 없다.”
▶트럼프 정부는 달러 약세를 원하지 않나.
“달러는 현재 분명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트럼프 정부의 일부 목적에 부합하는 면이 있지만, 실제 원인은 행정부의 전략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달러 약세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 경제에 대해 세계 투자자들이 예전보다 신뢰를 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달러자산을 줄이거나 환율변화에 대비해 헤지에 나서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감소했다는 신호다.”
▶관세 인상은 달러 강세의 요인일 것으로 예상됐다.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관세인상이 달러 약세를 동반한다는 것은 미국 정책 당국에게 걱정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년 전에는 달러와 유로가 거의 1대 1이었는데 지금은 유로화 가치가 상승했다. 유로가 기축통화로서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축통화라는 개념 자체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글로벌 투자자에게 ‘기준점’의 역할을 하는 통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로존의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미국 달러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유로의 상대적 지위가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다.”
▶유로 외에 다른 통화도 있지 않나.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달러 외에 유일하게 대규모로 전환 가능한 주요 통화는 유로 뿐이다. 일본 엔이나 영국 파운드는 규모가 작고, 중국 위안화는 경제력이 커도 (투자자가 수요에 맞게 아무 때나)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 국제통화로서 기능이 제한된다. 유로는 달러의 대체재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유로가 달러 대비 더 강세를 보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국가주의와 포퓰리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지향하는 통합을 저해하지 않을까.
“포퓰리즘 운동은 나라마다 서로 다르고, 그 나라의 역사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나로 묶어 말하기 어렵다. 예컨대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형제들’ 당은 집권 후에 EU의 통합이나 EU의 우크라이나 지원 노선과 충돌하지 않고 있다. 많은 포퓰리즘 정당은 실제 집권 경험이 없다. 40년 된 프랑스 국민연합(RN)도 집권한 적은 없는 당이다. 이탈리아 사례를 보면 이들이 집권 후에는 생각보다 덜 파괴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통합의 진전에 장애물은 무엇일까.
“유럽 통합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현재 EU에게는 가장 큰 단기적 도전이다. 지금까지는 EU가 매우 결속력 있게 대응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고, EU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미국은 예상대로 지원을 줄였지만 EU는 지원을 확대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EU 회원국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상당히 높은 가능성이 있다. 전쟁 중에는 어렵겠지만, 전쟁이 끝난다면 우크라이나는 EU 회원국이 되려 할 것이고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고 EU에만 가입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등이 그런 상태다. EU 회원국인 스웨덴, 핀란드도 최근에야 NATO에 가입했다.”
▶유로존은 더 확대될 것인가.
“크로아티아(2023년)와 불가리아(지난 7월)가 최근 유로존에 합류했다. 하지만 현재 EU의 현안인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정책, 무역 충격 같은 현안에서 유로존과 비 유로존 국가는 큰 차이가 없다. 금융위기가 다시 오면 유로존의 범위에 대한 문제가 부각될 것이다.”
▶EU와 한국 일본 등이 협력해 미국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그렇다.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최저한세 등 세제 문제 대응, 금융안정성 등 여러 글로벌 이슈에서 EU와 한국 일본의 이해관계는 아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을 포함해 협력해야 할 근거가 충분하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함께 가입하는 것과 같은 협력 확대는 매우 합리적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