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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여전히 미 중앙은행(Fed)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가운데 미국 고용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주요 기업의 대규모 감원 예고와 함께 10월 구조 조정 건수는 코로나19 특수상황을 제외하면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는 데이터도 공개됐다.
다음 달 9~1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Fed의 고민도 깊어졌다. 회의를 앞두고 Fed 위원들의 매파적 발언과 비둘기파적 발언이 혼재되어 나오고 있어 이번 회의에서 논쟁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10월 해고 통지 급증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은 미국 기업들이 예고한 대규모 해고 건수가 10월에 급증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클리블랜드 연은은 지난달 총 3만9010명의 미국인이 ‘연방 근로자조정 및 재훈련예고법’(WARN)에 따라 사전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집계했는데, 이는 금융위기(2008년~2009년)나 코로나19 팬데믹(2020년)을 제외하면 최근 20여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용정보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가 지난 6일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10월 감원 규모(15만3074명)는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10월 누적 감원 규모 역시 전년 동기 대비 65% 급증한 109만9500건이었다. 2020년 이후 최대치이자 지난해 전체 감원 규모(76만1358건)도 웃돈다. 감원 규모뿐만 아니라 감원 계획을 발표한 기업의 수도 증가했다. 기술, 소매, 서비스의 감원이 두드러졌다.
실제로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은 최대 1만5000명의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지난 13일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아마존이 1만4000명을 해고한다고 알렸다. 세일즈포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기술 기업들의 구조 조정 예고는 올해 내내 이어졌다. 이에 맨해튼 5번 애비뉴와 6번 애비뉴 인근 브라이언 파크에는 실직자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은 주요 빅테크 기업과 구인·구직 플랫폼 기업들이 몰려 있어 재입사를 위한 취업 준비 장소로 부상했다.
○“12월 FOMC서 의견차 클 듯”
노동시장 둔화 정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Fed 인사들은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고용에 초점을 맞추는 측은 과도한 긴축이 경기 침체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진영은 관세로 인한 물가 압박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하는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지난주 알베르토 무살렘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등 일부 Fed 인사들은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금리 동결이 필요하다고 명시적으로 발언했다.
고용 둔화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이날 영국에서 열린 한 행사 연설에서 “기저 인플레이션이 Fed 목표치에 근접하고 노동시장은 약세를 보인다”며 “12월 회의에서 기준금리 0.25%포인트 추가 인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더 많은 기업이 감원을 계획 중이라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부진한 소비자신뢰지수, 임금 상승 둔화, 주택·자동차 등 고가품 수요 부진 등의 상황은 물가가 다시 급등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필립 제퍼슨 Fed 부의장은 같은 날 공개연설에서 “현 통화정책 수준은 다소 긴축적이지만 우리는 (정책 수준을) 경제를 자극하지도 제한하지도 않는 중립 수준으로 변경해왔다”며 “(고용·물가 간) 변화하는 위험 균형은 금리 인하 진행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제퍼슨 부의장의 발언에 대해 ‘Fed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닉 티미라오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이는 Fed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며 “끈질긴 인플레이션 위험과 약해지는 고용 상황이라는 상반된 위협이 정반대의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다음 달 금리 결정 회의가 이례적으로 논쟁적인 회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임명한 세 명의 Fed 이사들은 금리 동결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CNBC에 출연해 인공지능(AI)이 노동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노동시장이 일시적인 정체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고용 둔화를 구조적 현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이날 CNBC에 출연해 “고용지표가 혼재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반면 생산과 수출 등 실물 활동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시장이 잠시 조용해지는 시기, 즉 채용이 정체되는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현재 금리선물시장은 12월에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내려갈 확률을 42.9%로 반영하고 있다. 반대로 금리 동결 확률은 57.1%로 일주일 전(37.6%)에 비해 급상승했다.
한경제 기자/뉴욕=박신영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