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가장 싸게 사는 방법이 있다. 대형 식자재마트 할인 행사에 가면 된다. 보통 한 판(30개) 기준 3980~4980원에 판다. 쿠팡이나 이마트보다 싸다. 식자재마트가 밑지고 파는 일은 없다. 달걀 유통업체에 납품 가격을 후려친다. 할인 가격에 맞춰 도매 원가(5500~6500원)를 훨씬 밑도는 2000~3000원대 가격이 제시된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어쩔 수 없다. ‘슈퍼 갑’ 식자재마트의 비위를 거스르면 거래가 끊기는 탓이다. 인천의 한 식자재마트는 한 판에 900원을 요구한 적도 있다. 이렇게 공급된 달걀은 할인 행사의 미끼 상품으로 쓰인다. 갑질, 편법 행위 기승
‘민생회복 소비 쿠폰’도 대형 식자재마트의 먹잇감이 된 지 오래다. 사용처는 연 매출 30억원 이하의 매장으로 제한돼 있지만 아랑곳없다. 연 매출 120억원이 넘는 수원의 한 식자재마트 계산대에는 ‘민생지원금 사용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버젓이 붙어 있다. 단속을 피하려고 다른 법인의 카드 단말기를 갖다 놓고 따로 정산하는 꼼수도 횡행한다. 소비 활성화와 소상공인의 매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소비 쿠폰이 엉뚱한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골목상권의 최상위 포식자로 떠오른 식자재마트는 2020년 1803개에서 올해 2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3대 식자재마트로 꼽히는 세계로마트, 장보고식자재마트, 식자재왕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총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들 3사는 최근 10년간 두 배 안팎 성장했다.
식자재마트가 몸집을 빠르게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상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이면 대형마트로 분류돼 월 2회 의무 휴업, 새벽 영업 제한,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출점 제한 등의 규제를 적용받는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10년 이후 차례로 도입된 규제다.
유통시장 교란, 규제 불가피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그동안 이 규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오프라인 위주의 유통산업이 e커머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구조조정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365일 24시간’ 영업이 가능한 대형 식자재마트가 그 빈자리를 파고들어 규제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문재인 정부 때는 대형마트를 뺀 식자재마트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성장에 날개를 달아줬다.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은 이제 대형마트가 아니라 식자재마트에 밀려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매장 쪼개기’로 지역 상권을 잠식하는 식자재마트도 상당수다. 실제 면적이 3000㎡가 넘지만 설계상 2~3개 동으로 쪼갠 뒤 통로로 연결하는 식이다. 식자재마트에 납품하는 소상공인에게 입점비 명목으로 수천만~1억원을 요구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갑질과 편법을 동원해 유통시장을 교란하는 식자재마트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마침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을 전담하는 제2차관직을 신설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참에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수혜나 규제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해 식자재마트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