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 창업자가 ‘월 1600만 원 매출을 보장한다’는 말을 믿고 음식점 인수 계약을 했는데 실제 매출이 이에 못미쳤다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매출액 차이가 민법상 '사기(기망)'까지는 아니지만, 중요한 계약 사항이었다면 '착오'로 인정돼 계약금을 되돌려 줘야 한다는 판단이다.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들을 유혹하는 '매출 보장의 함정’을 보여준 판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4부는 최근 초보 창업자 A씨가 음식점 양도인 B씨를 상대로 청구한 '계약금반환및손해배상등청구'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장사 경험이 없는 초보 창업자 A씨는 노원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B씨와 2023년 2월 '영업권 등 권리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고 두 개 점포 영업권을 넘겨 받기로 했다. 권리금은 6000만원, 그 중 1000만원은 계약금으로 책정했다.
A씨는 계약 전부터 “실제 월매출을 확인해야 결정할 수 있다”며 B에게 매출 자료 제공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B씨는 △관리비·지출 내역을 손으로 적은 문서 △‘월 1600만 원 매출’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기 손익표만 제공했을뿐 포스(POS) 매출자료, 세무신고자료 등 구체적인 매출 증빙자료는 “계약서 쓰고 나면 알려주겠다” “그렇게까지 자료 주는 곳은 없다”는 이유로 끝내 제공되지 않았다.
결국 계약금을 지급한 A씨가 “매입, 매출자료 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며 제출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B씨는 "보여줄 의무는 없다" "장사하느라 바쁘다"라며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A씨가 확인한 실제 매출은 1600만원에 턱없이 못미쳤다. 계약 체결 직전 2개년도(2021~2022) 평균 월매출은 각각 약 525만 원, 721만 원으로 B씨가 말한 1600만 원의 절반도 안됐다. 결국 A씨는 "매출이 사실과 다르다"며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B씨가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쟁점은 결국 A씨가 민법상 사기나 착오를 이유로 권리금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느냐로 번졌다. 1심 법원은 "계약 체결 직후인 2023년 3월 매출을 보면 1600만원에 크게 못미치는 것은 아니다"라며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법원은 '민법상 사기(기망)'로 인한 계약 취소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착오로 인한 취소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전 2개년도 매출액은 코로나19 시기였고 그 전인 2019~2020년에는 월 1300만 원대에 달했던 점 등을 참작해 “다소 과장이 있지만 허위로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분쟁이 일어난 후이긴 하지만 2023년에도 5월~8월 2024년 6월~8월까지 기간엔 매출액이 월 1600만 원을 넘겼고 특정 달엔 3000만원을 돌파한 점도 참작했다.
하지만 ‘착오’로 인한 계약 취소는 인정됐다. 초보 창업가인 A씨에겐 매출 정보가 계약의 결정적 요소였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A씨가 장사 경험이 없고 매출 안정성을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는데 반복적인 자료 요청에도 B씨가 정확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B씨의 (이같은) 언동이 A씨의 법률행위의 중요부분에 관한 착오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B씨는 받은 계약금 1000만 원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초보 창업자일수록 ‘말로 듣는 매출’에 의존해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법원 역시 “매출 보장 내용이 계약서에 없으면 기망으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입장에 가까워 말로 주고받는 매출 정보는 법적 보호 범위 밖에 놓이기 쉽다. 특히 상권 침체와 비용 상승으로 창업 실패 위험이 커졌지만 권리금 거래의 평균 금액은 여전히 높다.
조철현 법무법인 대환 변호사는 “권리금은 사실상 장래 매출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한 가격이기라 정보 비대칭이 심해 분쟁 가능성이 크다”며 “계약 전 정보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것만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