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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땀과 빛으로 그린 낭만, 국립발레단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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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땀과 빛으로 그린 낭만, 국립발레단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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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낭만발레의 원류를 잇는 ‘지젤’이 지난 12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13일에는 파리오페라발레의 한국인 에투알 박세은(36)이 지젤로 등장했다.




    독일 라인강을 배경으로 한 낭만주의 발레 지젤은 시골 소녀 지젤이 신분을 숨긴 공작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에게 약혼자가 있었단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 1막과 귀신(윌리)이 돼 알브레히트를 용서하는 2막으로 이뤄져 있다. 등장인물들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은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자연 회귀의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녹아든 구성이기도 하다. 동유럽 지역에 전해 내려오던 ‘죽은 신부들의 전설’은 지젤의 2막, 윌리의 세계로 이어졌는데 이는 발레사 중 가장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장면이란 평가를 받는다. 인간의 삶을 떠난 영혼들이 흰 드레스를 입고 밤숲을 거닐 때 현실은 사라지고 무대는 낭만주의적 환영만으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1841년 파리 초연 이후 ‘지젤’은 수많은 개정과 재해석을 거쳤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형태는 1860년 러시아 황실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정비한 판본에 기초한다. 프랑스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를 계승했고, 두 미학은 세월 속에서 경쟁하듯 공존하며 작품의 층위를 더했다. 한국 무대에선 이 두 흐름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러시아 마린스키 스타일의 지젤을, 국립발레단은 파리오페라발레 출신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의 프랑스식 버전을 이어오며 각기 다른 표정을 만들었다. 올해 두 단체의 ‘지젤’이 모두 무대에 오른 건 발레 애호가들에게 축제와도 같았다.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프랑스 원전의 맥락을 섬세하게 재현했다. 박세은의 존재는 전통을 현재와 연결해주는 매개처럼 느껴졌다. 박세은은 파리 공연에서 입었던 1막·2막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그 모습만으로도 프랑스 버전 특유의 실루엣과 분위기가 무대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기대를 모았던 파트너 김기완(36)과의 호흡은 오래전부터 약속된 것이었다. 예원·한예종 출신으로 오랜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은 ‘언젠가 함께 공연을 하자’고 했다. 20여년이 지나 그 염원을 이룬 이들의 마음은 교차되는 눈빛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날의 지젤은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만들어가는 서사에 가까웠고, 그 여운이 객석까지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다만 김기완은 부상으로 알브레히트의 도약과 회전 등 고난도 기교를 온전히 펼치지 못했다. 발레에서 기술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지젤’ 같은 고전 레퍼토리에서는 남자 주역의 앙트르샤 시스와 같은 동작이 하나의 상징처럼 받아 들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움직임은 한계를 숨기지않고 연기를 이어갔다. 피루엣을 돌며 흩뿌린 땀방울이 조명에 반사되던 순간, 그것은 우연의 효과를 넘어 알브레히트가 짊어진 운명의 흔적처럼 보였다.

    박세은은 세계 정상급 에투알다운 균형감, 고요한 중심, 정제된 선으로 파트너의 부족한 힘을 자연스럽게 감싸 안았다. 그녀가 오롯이 존재하는 순간 무대는 하나의 결이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한 세기 전 마리 탈리오니가 '공기의 요정'이 되어 무대에서 떠다니듯 춤췄다는 기록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이어졌고 2막의 윌리들은 밤의 기척 속에서 피어나는 흰꽃들처럼 무대를 채웠다. 낭만주의가 꿈꾸었던 저승의 세계,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그 장면이 거기에 있었다.




    공연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기교의 균열은 분명 존재했고, 어떤 관객은 이를 아쉬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결함은 역설적으로 작품의 감성을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형식적 완성도가 잠시 물러선 자리엔 두 사람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기술보다 감정이 앞서는 순간들은 오히려 오래 남았다.



    이날 공연을 통해 전막 발레란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의 영역이 아님을, 또 예술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감정의 밀도는 객석에 깊이 스며들었고 기술의 평가를 넘어 “그들이 무엇을 전하려 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이번 ‘지젤’은 콩쿠르가 아닌 무대에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지를 다시금 상기하게 만드는 무대였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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