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해고당한 지인들이 몇 명 모여서 취업 정보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 42번 스트리트와 6번 애비뉴 인근에 있는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만난 아이잭 씨는 최근까지도 인근 사무실에서 IT 관련 업무를 맡았지만, 최근 해고당했다고 전했다. 맨해튼 5번 애비뉴와 6번 애비뉴는 주요 빅테크 기업과 구인·구직 플랫폼 기업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브라이언트 파크는 맨해튼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모여 취업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유 오피스를 함께 빌려 취업 준비를 하는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존과 세일즈포스 등 빅테크 기업 뿐 아니라 각종 핀테크 기업,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본사 혹은 뉴욕 지사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최근 경기 둔화와 회사 내 AI의 역할 확대 등을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아이잭 씨와 같은 실직자들이 급증하는 중이다.
인근 상권 경기 영향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지난달 29일 정리해고 대상자인 사무직 1만4000명에게 이메일로 해고 사실을 통보했다. 아마존은 앞서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당시 베스 갈레티 아마존 인력 경험 및 기술 담당 수석부사장은 “고객과 (AI) 사업을 위해 더 빨리 움직이려면 더 적은 계층 구조와 더 많은 주인 의식으로 조직의 군살을 빼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맨해튼에 있는 아마존 사무실에서도 이같은 해고는 진행됐다. 맨해튼 내 9개의 사무실 위치에서 700명에 가까운 사무직 자리를 감축했다. 5번 애비뉴 242번지에 있는 아마존 사무실도 여기에 포함됐다.글로벌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도 대규모 해고를 진행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최근 “고객 서비스 지원 부문에서 약 4000명을 감원했다”며 “AI가 고객 서비스 상호작용의 절반을 처리하고 있어 예전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의 대규모 해고가 이어지면서 브라이언트 파크 인근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과 배달 기사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음식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를 통해 배달 기사로 일하는 안드레스 씨는 “직장인들이 많이 몰려있는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오전 11시와 오후 1시 사이에 배달 주문이 밀려드는데 최근엔 주문이 확연하게 줄고 있다”며 “직접 도시락을 싸 오는 직장인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월가 대형 은행들도 꾸준히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 없이 구직 공고만 내기도
이 때문에 고용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대학 및 대학원 졸업자들의 구직난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 5월 뉴욕대를 졸업한 미셸 모레티 씨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광고 및 홍보 관련 기업의 인턴 과정에만 들어갔을 뿐 정식 채용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날 6번가 인근 커피숍 블루보틀에서 만난 그는 “취업 경쟁에서 뒤처진 것일 수도 있지만 채용 공고를 내놓고 정식으로 사람을 고용해 자리를 채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사람은 필요한데 경기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 인턴십 프로그램만 운영한 뒤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CNBC는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를 인용해 최근 수년간 미국의 구인 건수는 실업자 수와 맞먹거나 그 이상을 유지해왔지만, 실제 채용 건수와 비교하면 모든 공고가 실제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2024년 초 이후 월평균 구인 건수가 채용 건수를 220만 건 이상 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괴리는 채워지지 않는 ‘유령 일자리’가 노동시장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기업들이 향후 인력 충원 가능성에 대비해 인재 풀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고를 게시하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에는 “유령 채용 공고를 규제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현재까지 5만 명 가까운 서명을 모으기도 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