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한계기업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 경제의 성장 추세가 구조적으로 둔화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어제 발표했다. 경제위기 때면 반복적으로 금융과 재정 지원을 통해 좀비기업을 양산해 온 정부 정책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한은은 우리 경제에 한계기업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정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4~2019년 퇴출 고위험 기업 비중은 약 4%에 달했지만 실제 퇴출당한 기업 비중은 절반인 2%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2∼2024년엔 퇴출 기업 비중(0.4%)이 퇴출 고위험 기업 비중(3.8%)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때 만약 고위험 기업군이 정상 기업으로 대체됐다면 같은 기간 국내 투자는 각각 3.3%, 2.8%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도 0.5%, 0.4% 더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명목 GDP(2556조원) 기준 10조원 이상이 좀비기업 때문에 증발한 셈이다.
이 같은 양상이 빚어진 데는 정부와 금융권의 무분별한 지원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피해를 이유로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의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를 전면적으로 제공했으며 올해 9월에는 44조원 규모의 만기 연장 대출을 재연장 조치했다. 이는 한계기업에 ‘산소호흡기’를 단 격으로, 이런 식으로 연명 처치만 하다 보니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돌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17.1%)이 14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한은 지적대로 이제는 약하고 쓰러지는 기업을 붙잡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성장성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개별 기업 차원보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보호·육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아울러 신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고통이 두려워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한국 경제는 영원히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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