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질은 부드럽지만 빛의 떨림까지 포착한 르누아르, 색을 단단하게 쌓아 올려 선을 살려낸 세잔.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두 거장의 작품이 나란히 걸린 서울 서초동 한가람미술관의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마치 19세기 파리 살롱전과 같은 긴장과 조화가 공존했다.
이번 전시는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협력해 엄선한 50여 점이 홍콩과 도쿄를 거쳐 서울에 왔다.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품이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네의 수련으로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의 소장품 가운데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이 한국에 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는 6개 섹션으로 이뤄졌다. 초입에는 두 사람이 남긴 야외 풍경화가 주축을 이룬다. 르누아르는 햇살 속 따뜻한 공기와 흔들리는 바람의 결을, 세잔은 산맥과 나무의 구조적인 상을 화면에 담아냈다. 야외 풍경화에서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화법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면 대비가 확연한 정물 코너가 등장한다. 르누아르가 색채의 조화로 정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면 세잔은 원근법을 해체하며 사과와 병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인물화에서조차 두 사람의 붓은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내놨다. 화풍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전시를 한데 모아둔 이유는 무엇일까.
세실 지라르도 오랑주리 미술관 부관장은 “두 사람의 작품이 접점 없이 달라보이지만 동시대를 산 거장으로서 공통된 실험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법상 두 화가가 다른 길을 걸었지만 20세기 미술을 여는 정신적 지주가 됐지요. 서로를 존중하고 깊은 존경심으로 우정을 나눈 이들의 생애와 작품의 교차점을 파악하도록 이번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지라르도 부관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18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전시의 마무리는 두 화가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조명했다. 세잔의 분석적인 작법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로 이어졌다. 르누아르의 유연한 곡선과 온화한 색채는 피카소가 고전주의로 회귀했을 때 영향을 미쳤다. 세잔을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언급한 피카소지만 르누아르의 그림 7점을 소장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비교를 넘어 19세기 인상주의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관객이 직접 느끼도록 만든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