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 상영을 전제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 온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퍼스트’ 전략에 변화가 보인다. 하반기 주요 영화 라인업 세 편을 일제히 스크린에 먼저 걸며 극장과 밀월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척점으로 여겨졌던 극장과 스트리밍 플랫폼이 공생 시너지를 내는 모습이다.
11일 영화계에 따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제이 켈리’가 오는 19일 극장 개봉한다. 다음 달 5일 예정된 스트리밍 공개보다 2주가량 앞선 일정이다. 유명 배우가 진정한 자아를 되찾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영화는 노아 바움벡이 메가폰을 잡고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출연해 화제를 끌었다.
‘제이 켈리’는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넷플릭스가 올해 하반기를 겨냥해 선보이는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 지난 9월 막을 내린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초청될 만큼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제이 켈리’에 앞서 다른 두 작품은 먼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10월 24일 공개)가 지난달 8일, ‘프랑켄슈타인’(11월 7일 공개)이 지난달 22일 각각 극장 개봉했다. 영국과 미국 등 주요 영화시장의 극장 개봉 시점은 국내보다 더 이르다.
극장 선개봉이 넷플릭스에 유의미한 수익을 안겨주거나 플랫폼의 ‘오리지널리티’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극장에서 넷플릭스 공개 전까지 짧은 기간만 선보이는 제한적 상영이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이날 기준 74개 스크린에서 342회 상영되는 데 그쳤다. 극장 누적 매출액은 약 2억3600만 원으로 1억2000만 달러(약 1600억 원)를 들인 제작비와 비교하면 수익성은 ‘제로(0)’에 가깝다.
기대작을 일제히 선공개하는 넷플릭스의 행보는 내년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을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제이 켈리’ 등 세 작품이 ‘오스카 레이스’의 출발점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출품 조건을 맞추기 위해 미국 등 주요 시장 극장에 개봉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에 출품하려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한 주요 도시 상업극장에 최소 하루 1회 이상, 7일 연속으로 상영해야 하는데 특히 OTT 영화는 스트리밍 공개 전에 극장에 먼저 선보여야 한다.

OTT에 압도된 구식 플랫폼으로 여겨졌던 극장의 순기능을 발견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올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데몬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장기 흥행이 대표적이다. 케데헌이 수 개월 간 콘텐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소로 극장의 ‘싱어롱 상영회’가 꼽히기 때문이다. 케데헌은 지난 8월 북미 1700개 극장에서 이틀 간 싱어롱 상영으로 1920만 달러를 벌어들여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2개월 만인 지난달 31일부터 사흘 간 재개봉해 53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스트리밍 중심의 넷플릭스가 ‘하이브리드 개봉’으로 화제성을 유지하고 팬덤 기반 영역까지 매출 기반을 넓힌 것이다.
영화산업의 장기 침체에 따른 투자·제작 경색으로 이렇다 할 신작이 없는 극장 입장에선 넷플릭스의 극장 경유가 반갑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블록버스터는 커다란 스크린과 잘 갖춰진 음향 등 극장에서 볼 때 관객 반응이 좋다”면서 “흥행 기대작인 만큼 극장과 OTT 양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