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 현재는 훌륭한 악단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 명성을 미래에도 이어가는 겁니다. 저절로 훌륭해지진 않습니다. 10년 뒤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사진)의 진지한 답변에 관객들의 눈이 반짝였다. 메켈레는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와의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객석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공연 시작까지 약 1시간30분밖에 남아 있지 않아 긴장감이 컸을 상황. 그럼에도 그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 관객들과 소통했다. 다른 공연장에선 관객들이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세계 최고 지휘자가 누구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지휘자를 꼽는다면 메켈레는 첫손에 들 만하다. 1996년생으로 스물아홉 살에 불과한 이 핀란드 청년은 이미 파리오케스트라와 오슬로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메켈레는 2027년부터는 미국 5대 악단으로 꼽히는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와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겸한다.
◇최종 리허설 마치고 관객 앞에 선 메켈레

메켈레가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와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는 베를린필하모닉, 빈필하모닉과 함께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믿고 공연을 볼 수 있는 3대 악단으로 꼽힌다. 메켈레는 공연에 앞서 ‘아티스트 토크’로 한국 팬들을 만났다. 한국경제신문 정기 구독자와 아르떼 매거진 정기 구독자,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예매자 중 추첨을 통해 메켈레와 소통할 관객 50명을 추렸다.
메켈레와의 대담이 열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선 공연 전부터 그를 보려는 팬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번 공연 관람에 앞서 아티스트 토크에 참석한 관객 김지연 씨(67)는 “눈앞에서 메켈레와 이야기를 함께 나눠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라며 설렘을 드러냈다. 이번 대담엔 악단 경영을 총괄하는 도미니크 빈터링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 대표도 참석했다. 미래의 수석지휘자뿐 아니라 악단 경영인도 함께해 한국 관객들과 악단의 매력을 나누고 싶다는 오케스트라의 뜻이 반영됐다.
메켈레는 “드레스 리허설(마지막 사전 연습)을 막 마쳤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날 공연하는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 대해선 “아름다움과 깊이를 동시에 품고 있다”며 “버르토크가 말년에 미국에 있으면서 고향 헝가리에 품은 향수와 그리움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무대에 오를 악단에 대해선 “부드러운 벨벳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휘할 때 제 접근법은 실내악 같아요. 제일 중시하는 건 단원들과 함께 조화를 찾아가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표현하는 겁니다.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는 라디오에서 소리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고유한 음색이 있는 악단입니다.”
◇음악 꿈나무들에게 리허설도 공개
메켈레는 단원들과 소통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도 진솔하게 밝혔다. “100명이 넘는 단원의 소리를 하나인 것처럼 만드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단원들 앞에서 루틴을 따로 정해두지는 않는단다. “루틴이 없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 단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연주할 수 있거든요. 단원들은 기계가 아니거든요. 날씨가 다르듯 사람도 감정이 매일 다르니 날마다 좋은 연주를 만드는 일에 집중할 뿐입니다. 때론 기교에 집중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 않고 연습하기도 합니다.”
메켈레는 함께한 관객들과 사진 촬영을 하는 것으로 대담을 마무리했다.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의 파격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이 악단은 지난 2일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플루트 사중주단을 꾸려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6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에 앞서 리허설도 깜짝 공개한다. 연세대, 추계예술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공부하거나 온드림 앙상블 등에서 활약하는 꿈나무들에게 직접 자신들의 노하우를 선보인다.
9일엔 부산콘서트홀로 가 부산 시민들을 만난다. 빈터링 대표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는 137년 역사 속에서 말러가 직접 지휘했던 악단”이라며 “투어의 첫 포문인 서울 공연에서 여러분을 뵙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이주현/김수현 기자 dee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