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더 이상 피아니스트가 아닙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81)가 반세기 넘게 이어온 자신만의 피아니즘 세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라디오 방송 헤나센사(Renascenca)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공식적으로 무대와 결별을 선언하며 예술가들을 위해 세운 '벨가이스 예술센터'를 매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나는 대형 홀을 돌며 수많은 관객 앞에서 성공을 좇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정신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의 담담한 고백은 지난 6월, 경미한 뇌졸중 이후 공연 활동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밝힌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 그때 피레스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고 싶다"며 "휴식과 내적인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리스본 굴벤키안 재단에서 열린 '헬레나 바즈 다 실바 유럽상' 시상식 직후 이뤄졌다. 피레스는 이 자리에서 "건강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를 주었다"며 "한때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시골에서 지내며 자연과 대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단순한 은퇴의 소회가 아니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메시지였다. 피레스는 "경쟁은 전쟁이다. 무기만 다를 뿐, 결과는 언제나 어떤 것의 죽음"이라며 오늘날 예술계와 사회의 경쟁 구조를 비판했다. "아이들은 의식의 부재로 갈증을 겪고 있고, 세상은 쓰레기로 가득하다”는 그의 말은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예술의 윤리와 인간적 사유를 압축한다.
그는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무대가 아닌 개인적인 순간에만, 그리고 자주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피레스의 은퇴는 연주 활동의 끝이 아니라, 음악가로서의 사회적 정체성 자체를 내려놓는 선택이었다.
그가 '헬레나 바즈 다 실바 유럽상'을 받은 이유는 벨가이스 예술센터를 통한 활동 덕분이다. 이 상은 유럽 문화유산 단체인 유로파 노스트라(Europa Nostra), 포르투갈 언론단체인 클루베 포르투기즈 데 임프렌사(Clube Portugues de Imprensa)가 2013년에 공동으로 제정한 것으로 유럽의 문화유산을 대중에게 알린 유럽의 인물 또는 단체에게 주어진다. 문학, 음악, 보도, 사진, 다큐멘터리 등 다방면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한다. 심사위원단은 피레스의 수상에 대해 이렇게 발표했다.
<i>"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작업은 공연을 넘어 교육자, 문화사상가로서 역할을 포함하며 연민, 포용, 예술적 탁월성의 가치를 뿌리내렸다."</i>
벨가이스 예술센터는 1999년 포르투갈 동부 베이라 바이샤에 들어섰다. 음악 교육, 예술가 레지던시, 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은 내면과 사회를 연결하는 힘'이라는 피레스의 신념을 실천해온 곳이다. 예술과 삶, 사회와 환경이 맞물린 실천의 현장이었다. 피레스는 인터뷰에서 "그곳의 정신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4살 때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자리매김하며 평생을 음악에 헌신한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해석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피아니스트로 평가받았다. 투명한 음색, 깊은 내면 표현으로 '시적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1970년대부터 도이치 그라모폰(DG)사와 협업하며 남긴 모차르트 협주곡과 소나타 전집은 지금도 명반으로 꼽힌다. 화려한 기교보다 음악의 본질, 인간적인 성찰을 추구해온 피레스는 '연주를 통한 철학적 대화'라는 예술관으로도 유명하다.
윤리적이면서 미학적 방향을 견지했던 피레스의 내한 공연은 지난해 가을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업계에서는 그의 마지막 한국 무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구 음악계 일부에서는 피레스의 은퇴 선언을 두고 "연주자 경력의 마무리를 새롭게 정의한 사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울리는 여운의 형태처럼 피레스의 선언은 수면 위 파동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해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