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딤돌소득, 美 보장소득보다 앞서”
에이미 캐스트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디딤돌소득 실험은 국제 보장소득 연구안에서도 눈에 띄는 시도”라며 “같은 취약계층이라도 누구에게 더 많이 지원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캐스트로 교수는 보장소득연구센터(CGIR·Center for Guaranteed Income Research)를 공동 설립해 캘리포니아 스톡턴 등 도시에서 현금 지급 실험을 총괄했다.오 시장이 2022년 선보인 디딤돌소득은 소득이 적은 가구의 소득 부족분을 현금으로 메워주는 ‘하후상박형 보장소득’이다. 중위소득을 기준선으로 잡아 각 가구의 실제 소득이 거기서 얼마나 모자라는지 계산하고, 그 격차의 일정 비율을 현금으로 메워준다. 소득이 낮을수록 더 받는 구조다.
시는 2022년부터 3년간 약 5000가구를 선정해 디딤돌소득을 실험했다. 이 기간 소비 패턴, 건강, 교육 지출, 여가 시간 변화를 내년 12월까지 집중 분석할 계획이다. 현금만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구직·직업훈련 정보와 기존 복지·돌봄 서비스 연계가 함께 이뤄진다. 추가 노동에 대한 인센티브가 훼손되지 않도록 설계됐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캐스트로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보장소득 실험과도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주요 현금 이전 프로젝트는 대체로 월 500~1000달러를 같은 기간(6개월~2년) 주는 식이었다”며 “이는 비교가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 가구의 생활 수요와 지역 물가 격차 등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30여 개 도시에서 현금 이전 실험
캐스트로 교수가 이끄는 CGIR은 미국 30여 개 도시에서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현금 이전 실험을 하고 있다. 건강, 식생활, 시간활동 등 6개 공통 지표를 두고 미국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감독 아래 운영한다.미국 보장소득은 도시마다 지급 기간이 서로 다르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각양각색이다. 지급액도 지역별로 월 500달러부터 많게는 월 1000달러까지 다양하다. 이를 종합해 기간, 지급액 등 변수에 따른 효과를 분석하기에 용이하다. 캐스트로 교수는 “이런 구조화된 데이터가 있어야만 정치적 논쟁을 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로 실험 대상자의 시간 활용에 관심을 둔다. 캐스트로 교수는 “재정 빈곤은 곧 시간 빈곤으로 이어진다”며 “현금을 받으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밀린 공과금을 정리하지만, 그다음엔 그동안 하지 못한 건강 관리와 자녀 돌봄에 시간을 쓴다”고 말했다. 그가 보장소득 정책을 돈이 아니라 시간을 돌려주는 복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디딤돌소득 역시 건강, 교육, 시간활동 등을 성과 지표로 측정하고 있다.
그는 ‘보장소득이 사람을 놀게 만든다’는 시각에는 선을 그었다. CGIR 실험에서 현금을 받은 가정의 자녀가 방과 후 활동, 대학 진학 준비 등에 더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디딤돌소득의 향후 과제도 짚었다. 그는 “도시와 지방, 노인과 청년 간 금융 접근성 격차가 큰 나라에선 지급 수단 설계가 성패를 가를 수 있다”며 “고령층에는 실물 카드와 계좌를, 청년층에는 모바일 결제 수단을 제공하는 혼합형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