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청년 타운홀 미팅에서 기업이 청년보다 단기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배경을 “고용 유연성 확보가 안 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번 뽑으면 정년과 급여가 보장되는 경직적 고용 구조가 다양한 형태의 청년 신규 채용을 가로막는다는 취지였다. 이를 바꿔 말하면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용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문진영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선진국들처럼 사회안전망을 기반으로 한 고용시장 유연성 확대를 강조한 것”이라며 “강조점이 유연성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에 있다”고 했다. 주 4.5일 근무제와 정년 연장처럼 노사 간 입장차가 첨예한 사안은 사회적 대화 과정을 충분히 지켜본 뒤 정부 입장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문 수석과의 일문일답.
▷고용 유연성은 왜 필요하나.
“우리나라는 비교적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이런 경제 구조에서는 고용시장이 유연해야 유리하다. 내수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경제가 유지되는 나라에 비해 유연성의 필요성이 더 크다. 글로벌 산업 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기술도 발전하고 있기에 이에 맞춰 고용 유연성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노조는 ‘유연성’에 반발한다.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는 생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직된 시장에서 어떻게든 직장을 지키려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노조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고용 유연성 확보의 대전제는 사회안전망 확보다. 고용을 유연하게 하되, 근로자 생활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대통령이 언급한 고용 유연성도 사회안전망이 전제된 다음에 확보돼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안전망이라는 건 뭘 의미하나.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유연성과 안정성 합성어)가 가장 먼저 나온 게 네덜란드다. 노동시장 진출입이 굉장히 자유롭다. 마찰적 실업일 수도 있고, 이직 과정의 자발적인 일시적 실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기간 모두에 대해 사회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보장해준다. 직장 생활할 때랑 실업일 때랑 생활상 큰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모델인가.
“물론 시장 규모가 뒷받침돼야 한다. 네덜란드에서 가능했던 건 유럽 통합으로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유럽 어디에 가든 일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시장이 너무 좁다. 기업이 일정 역할을 해줘야 한다.”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가.
“정부 차원에서 복지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만 기업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다. 근로자 개개인이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대타협이 가능해질 수 있다.”
▷고용 유연성은 청년 채용과도 연결된다.
“구직 촉진 수당을 확대할 계획이다. 자발적 이직자는 구직급여 대상이 아니었는데 생애 첫 이직의 경우 구직급여를 지급해 고용의 안정성을 높일 생각이다. 능력 개발 훈련을 통해 안정적으로 다음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고 한다.”
▷기업에는 어떤 지원을 하는가.
“청년 채용을 늘리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통합고용 세액공제 규모와 적용 기간을 확대할 계획이다. ‘일 경험’과 숙련도를 제공하는 기업에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삼성의 ‘SSAFY’ 제도가 대표적이다. 꼭 채용하지 않더라도 구직 청년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정년 연장(60세→65세)도 화두다.
“노동인구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소득 크레바스’(정년과 연금 수급 시기 미스매치) 문제도 있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컨센서스는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지만 방법론에 차이가 크다.”
▷노조는 임금 감소 없는 정년 연장을 요구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예전처럼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던 시대가 아니다. 기술 익혀서 학교 졸업하고 회사 들어가 정년까지 한 회사에 다니는 건 흔치 않은 일이 됐다. 노동시장에 굉장히 큰 변화가 왔다.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사측은 임금 감소 없는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단순히 고참 직원 한 명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채용하는 데 따르는 부수적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각종 보험 등 비용이 너무 커진다는 우려를 한다. 어느 정도 이해된다.”
▷정년 연장 논의의 가장 큰 우려 지점은 뭔가.
“세대 간 갈등이다.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세대가 불리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어느 정도 입증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세대 간에 벌어질 수 있는 복합적 문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단 국회 논의를 신중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물론 정부 자체안(案)도 마련하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노사정 합의의 틀 안에서 정부안을 공개하겠다.”
▷주 4.5일제는 어떻게 추진하는가.
“정부에서 주 4.5일제에 관한 통일된 가이드라인은 없다. 세브란스병원처럼 모범적으로 노사 자율 협약으로 추진하는 게 우선이다. 노사 합의에 기초하지 않으면 제대로 정착될 수 없다.”
한재영/김형규 기자 jy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