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연기금 중 1등
올해 수익률을 견인한 자산군은 단연 국내주식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 주가가 급등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수익률은 지난달 말 기준 60%를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벤치마크 대비 1%포인트 넘게 웃도는 초과 성과를 거뒀다. 통상 수익률이 벤치마크를 0.3~0.4%포인트만 앞서도 ‘우수한 성과’로 평가되는데, 시장 기대치를 크게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해외주식도 올해 미국 기술주 중심의 상승 랠리 덕분에 20%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채권과 대체자산에서도 견조한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채권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로 가격이 상승했고, 해외채권도 환차손 부담에도 불구하고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 중이다. 전체 자산의 16.2%가량을 차지하는 대체투자 부문은 사모, 인프라, 부동산 자산 모두에서 플러스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체투자는 원화 약세에 따른 환산차익과 함께 금리 하락기 기대가 반영되며 향후 추가 평가이익이 예상된다.
이번 운용 성과는 글로벌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글로벌SWF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일본공적연금(GPIF) 등 주요 연기금의 최근 10년간 연간 수익률은 6~9%대에 머물러 있다. 성과가 좋은 지난해에도 주요 연기금 수익률은 CPPIB 14.2%, GPIF 14.2%,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13.1%, 미국 캘퍼스 9.1% 등으로 집계됐다.
이들 해외 연기금은 한국 증시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 데다 올해 미국 증시 상승세가 작년만 못한 만큼 큰 폭의 수익률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국민연금의 20%대 수익률은 글로벌 연기금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다. 국민연금 운용자산은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 GPIF, GPFG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올 들어 지금까지 기금 운용 수익률이 벤치마크 대비 나쁘지 않은 상황이지만 구체적인 초과 성과는 밝히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 기금 고갈시기 늦춰
국민연금의 3년 연속 수익률 신기록 행진이 장기 평균 수익률 자체를 끌어올리는 구조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지난 20년(2005~2024년) 운용 수익률은 6.27%다. 올해 연간 수익률을 보수적으로 20%로 가정할 경우 20년(2006~2025년) 수익률은 6.99%까지 상승한다. 단 1년의 초과 수익률로 20년 평균이 0.7%포인트 가까이 높아지는 셈이다.중기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기금 고갈 시점도 늦춰진다. 보건복지부가 제5차 재정추계의 가정 수익률 4.5%를 적용해 추정한 기금 소진 시점은 2057년이었다. 하지만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한 자료에 따르면 운용수익률을 6.5% 유지하면 기금 소진 시점이 2090년까지로 33년 늦춰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재정적자 전환 시점도 기존 2041년에서 2070년으로 29년 연장된다.
국민연금이 올 들어 기금 운용으로 200조원 넘는 수익을 올렸는데, 이는 올해 가입자 납부액(약 62조원)의 세 배를 넘는다. 보험료 수입이 아니라 기금 운용을 통해 벌어들인 자산이 연금 재정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익률이 제도개혁보다 더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물론 위험자산 비중 확대와 장기투자 기반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직 기금운용본부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위험자산 비중을 전략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운용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