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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카지노 재벌’ 다툼의 끝에 새 주인 찾는 호쿠사이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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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카지노 재벌’ 다툼의 끝에 새 주인 찾는 호쿠사이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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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이하 파도)는 동양미술을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일본 에도시대 우키요에(浮世?)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남긴 ‘후가쿠 36경(景)’ 중 하나인 이 목판화가 19세기 서양 인상주의 예술의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세 척의 배가 거대한 풍랑에 휩쓸린 도상에서 경외(敬畏)의 감정이 읽히는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 같은 화가뿐 아니라 클로드 드뷔시 같은 인상파 음악가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줬다.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같은 유수의 미술기관들이 앞다퉈 소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10여 점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의 진본 중 하나가 홍콩에 모습을 드러낸다. 글로벌 미술품 경매사 소더비가 오는 22일 여는 ‘오카다미술관 아시아 미술 걸작전’ 경매에 출품된다. 202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6억4000만 원에 낙찰돼 눈길을 끈 지 2년 만에 또 다른 판본이 경매에 오른다. 500만~800만 홍콩달러(약 9억2000만~14억7000만원)의 가격표가 달렸는데, 또 다른 36경인 ‘산 정상 아래의 뇌우’(200만~250만 홍콩달러)도 함께다. 판화로는 이례적인 가격이지만 최근 아트 바젤 파리, 프리즈 런던 같은 주요 아트페어가 활기를 보이는 등 불황 속에서도 “팔릴 작품은 팔린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터라 ‘큰 손’ 컬렉터의 경쟁이 치열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동아시아美 정수”…걸작들 한 자리에

    호쿠사이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총 125점이 출품되는데, 추정가만 놓고 보면 ‘파도’보다 윗단에 놓이는 작품이 많다. 눈길을 끄는 건 70점 이상 쏟아지는 중국 도자다. 고대 상나라 후기 제례용 청동기부터 청나라 황실 도자기까지 2000여 년을 아우른다. 청나라 건륭제 시기 황실도자인 ‘청화투채·분채금채 팔길상문 천구병’이 3000만~6000만 홍콩달러(55억~110억 원)로 가장 비싸고, 현재 80여 점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송 휘종대의 최고급 황실 청자 가마 여요(汝窯) 도자인 ‘북송 여관요 대형 완’도 2000만~4000만 홍콩달러(37억~73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한국 도자기도 나온다. 13세기 고려시대 상감청자 ‘화문 정병’은 150만~200만 홍콩달러(2억7500만~3억6700만원)에 출품된다. 정병(淨甁)은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 소더비는 “고려시대 도자 예술과 불교 의례적 상징성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살짝 굽은 목과 서서히 좁아지는 몸체가 고려 청자의 우아한 비례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최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조선 전기 청화백자 항아리가 약 35억 원에 낙찰되는 등 한국 도자는 늘 애호가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고미술 장르 중 하나다.




    일본 작품 중에선 가노 모토노부의 6폭 병풍 ‘사계화조도’가 눈길을 끈다. 모토노부는 아버지 가노 마사노부를 이어 일본 무로마치 후기부터 메이지 초기 이름을 날린 가노파를 이끈 화가다. 일본 회화 역사에서 최대 규모의 전문 화가 집단으로 꼽히는 가노파는 중국 남화풍의 토대에 일본적 감수성을 섞은 독자적 양식을 발전시키며 근대 일본화의 기반을 이뤘다. 400만~600만 홍콩달러(7억4000만~11억원) 나온 모토노부의 초기 양식으로 대담한 붓놀림과 힘 있는 윤곽선이 돋보인다.

    카지노 재벌싸움이 만든 경매


    이번 경매는 일본 오카다미술관이 소장품 일부를 매각하면서 마련됐다. 오카다미술관은 도쿄 근교 하코네에 자리잡은 미술관으로 2013년 개관했다. 규모 면에서 큰 것은 아니지만 일본 회화를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 도자, 불교 조각 등 높은 수준의 동아시아 미술품을 갖췄다는 평가다. 약 450여 점을 갖췄는데,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고미술상인 고추쿄(壺中居)가 컬렉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점이라도 더 수준 높은 컬렉션을 구축하려 애쓰는 미술관 입장에서 오히려 소장품을 대량 매각하는 모습은 다소 생경하다. 내막을 살펴보면 미술관 설립자 오카다 카즈오(83)가 휘말린 오랜 송사(訟事)가 있다. ‘파친코 황제’로 불리는 일본 카지노 재벌인 오카다는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1970년대 슬롯머신 제조·유통사업에 진출했다. 일본의 경제 호황 파도를 타며 회사를 급성장시킨 그는 2002년 미국 카지노 재벌 스티브 윈과 손잡고 윈 리조트를 공동설립, 미국 라스베가스와 마카오에 복합리조트카지노를 개장했다.

    문제는 2012년 스티브 윈과 사이가 틀어지며 발생했다. 윈 리조트 그룹 부회장이었던 오카다는 이와 별개로 필리핀에 카지노 사업 진출을 노리다가 뇌물 의혹에 휩싸였는데, 이를 ‘부패 리스크’로 본 윈 리조트가 이사회를 열어 오카다가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와 미국 자회사를 통해 쥐고 있던 그룹 지분을 헐값에 인수하는 축출 작업에 나섰다. 약 10년 간의 법적 다툼은 결국 윈 리조트가 24억 달러를 보상으로 지급하는 조건에 일단락 됐지만, 오카다는 2022년 변호사비로만 5400만 달러를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는 등 막대한 비용을 떠안아야 했다.



    이번 경매의 시작점도 바로 이 여파에서다. 미술계에선 오카다가 소장품 일부를 매각해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란 해석을 내놓는다. 일본 카지노 대부의 법적 분쟁 ‘나비효과’가 낳은 경매는 업계 입장에선 뜻밖의 호재다. 오랜 불황으로 미술시장의 숨 고르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투자 심리를 자극할 촉매가 될 수 있단 기대에서다. 니콜라스 초 소더비 아시아 회장은 “이번 컬렉션은 최근 몇 년 새 경매에 오른 동아시아 미술품 중 가장 중요한 컬렉션”이라고 아트뉴스를 통해 밝혔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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