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품에 싸인 곳, 섬진강 줄기에 안긴 도시. <춘향전>과 <혼불>이 태동한 곳. 요천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며 남원의 가을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남원은 춘향과 몽룡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얽혀있는 도시다. 그렇지만 두 사람으로만 남원이라는 도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판소리가 태동한 예향(藝鄕)이자, 청정한 땅에서 얻은 재료가 남도의 손맛을 만나 완성한 맛의 고장인 덕분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연이다. 한반도의 허리, 백두 대간으로 이어지는 지리산과 남도를 휘도는 섬진강이 있는 고장이 남원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매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조금 속도를 낮추는 것이 좋겠다. 자전거 여행이 어느 도시보다 어울리는 까닭이다. 남원역 앞 여행객을 위한 공공 대여소 ‘자전거RO’는 자전거 여행의 좋은 출발점이다. 이곳부터 느긋이 달려도 15분이면 도심 한가운데인 광한루원에 닿는다. 섬진강 줄기인 요천을 따라가는 요천 100리 숲길을 달리며 남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다.

숲이 속삭인다
우리네 선조들에게 수목(樹木)은 그저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였다. 남원 서어숲마을에서도 이러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다. 200년 전, 이곳의 주민들은 마을의 기가 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어나무를 심기에 이른다. 유독 줄기가 튼튼해 '근육질 나무'라고도 불리던 바로 그 나무다. 백여 그루의 서어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울창한 숲을 이뤘다.

숲에 들어서면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옥색과 회백색을 띤 줄기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덕분이다. 커다란 나무 앞에 소원을 빌던 조상들의 심경을 이해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분위기다. 숲은 여름에도 15℃ 안팎의 온도를 유지해 여름 무더위를 피하기에도 좋다.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잎사귀가 황금빛 물결을 이룬다. 가히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첫손에 꼽힐 만한 풍경이다.
지척의 삼산마을에서는 자연이 빚은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마을 뒷산 능선부터 군락을 이룬 천년송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른 아침 안개가 운무가 끼면, 용이 꿈틀대는 듯한 신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문학의 혼이 어린 곳
대하소설 <혼불>은 고달프고 서러웠던 일제강점기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삶을 꾸려갔던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다. 작품은 1930년대 매안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 며느리와 빈민촌인 거멍굴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남원시 사매면의 노봉마을이다.


마을 앞편으로 들어선 혼불문학관은 작품과 이를 탄생시킨 소설가 최명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1980년부터 17년간 혼신의 힘으로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의 육필 원고와 손때 묻은 소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곳곳에 쓰인 <혼불>의 문장은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인근의 서도역영상촬영장 역시 <혼불>의 무대가 된 곳. 실제 전라선이 오가는 역이었으나, 2002년 지금의 남원역으로 기차역을 옮기며 폐역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간이역으로, 고즈넉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드라마에서도 이곳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강산이 몇 번씩 변하는 와중에도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서도역. 메타세쿼이아 숲길 사이로 이어진 기찻길을 거닐며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여유를 만끽해 보자.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