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이 27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AI가속기 칩 출시를 선언하며 업계 선두인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던졌다. 모바일과 통신용 반도체 강자인 퀄컴이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플랫폼에 이어 AI 가속기 시장까지 눈독을 들이면서 AI 인프라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시장은 즉각 환호했다. 퀄컴의 주가는 이날 11.09% 폭등한 187.6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추론용 칩 타깃으로 엔비디아와 차별화
퀄컴은 차세대 AI 가속기 칩인 AI200과 AI250을 각각 2026년과 2027년에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AI200은 독립형 부품, 기존 기계에 추가할 수 있는 카드와 전체 서버 랙 형태로 제공될 예정이다.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스마트폰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퀄컴이 스마트폰 칩을 만들며 수십 년간 축적한 '저전력·고효율' 설계 노하우를 데이터센터 규모로 확대한 것이다. NPU는 AI 연산에 특화된 프로세서로, GPU 대비 35~70% 적은 전력으로 더 나은 추론 성능을 제공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 작업 속도를 높이면서 전력 소모는 최소화해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운영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구상이다. 엔비디아의 칩이 학습에 특화됐다면 퀄컴은 추론용 칩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 칩이 약속한 성능이 나온다면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기 요금에 골머리를 앓는 빅테크 기업들에게 엔비디아,AMD 칩을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빅테크 수주 여부가 관건
퀄컴이 AI가속기 반도체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한 건 기존 사업의 정체를 극복하고 신사업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퀄컴은 애플, 삼성전자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 최강자로 꼽힌다. 그러나 최대 고객사인 애플이 올초 자체 5G 모뎀 칩을 공개해 퀄컴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퀄컴 입장에선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스마트폰 시장도 정체기에 접어든데다, 삼성전자, 대만 미디어텍 등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퀄컴의 점유율을 위협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사업 다각화는 AI 데이터센터 뿐만이 아니다. 퀄컴은 지난달엔 BMW와 3년간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 플랫폼 '스냅드래곤 라이드 파일럿'을 공개하며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이 플랫폼은 최첨단 차량용 반도체와 AI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것으로, BMW의 최신 전기차 'iX3'에 처음으로 탑재됐다. 오는 2026년까지 적용 국가를 10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퀄컴의 성공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빅테크로부터 수주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퀄컴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의 AI 스타트업 휴메인과의 대규모 공급 계약도 공개했다. 휴메인은 내년부터 퀄컴의 칩을 기반으로 200메가와트(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최대 2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퀄컴이 아마존 등과 같은 미 빅테크로부터 추가 수주를 이어간다면 AI 인프라 시장 구도도 요동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르가 말라디 퀄컴 수석 부사장은 이날 "이 분야에서 조용히 시간을 들이며 역량을 쌓아왔다"며 "모바일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메모리 기능과 전력 효율성이 고객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