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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 닫아야할 판" 사장님 한숨…신촌에 무슨 일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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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 닫아야할 판" 사장님 한숨…신촌에 무슨 일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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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너무 먹고싶은 거 아니면 안 나가요."
    학생의 한마디가 신촌 상권의 현실을 대변한다.

    17년간 신촌역 3번 출구 앞을 지켜온 새마을식당이 지난 9월 문을 닫으며 남긴 안내문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다. 유리창에는 "경영이 어려워 로또 당첨을 기원했으나 당첨되지 않아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새마을식당 신촌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지막 안내문만 남았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는 비어 있다. 옆 빽다방 포스터만 덩그러니 붙어 있는 풍경은 신촌의 달라진 점심 풍속도를 상징한다. 골목 안 찜닭집과 중국집은 썰렁하지만, 길 건너 맥도날드와 버거킹에는 긴 줄이 이어진다. '만원 한 끼' 시대, 신촌의 점심은 이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28일 기자가 직접 신촌을 둘러봤다. 찜닭집, 텐동집, 중국집 등은 손님이 드물고, '폐업 정리' 현수막이 붙은 곳도 있다.

    연세대 바로 앞 중국집은 점심시간임에도 테이블의 3분의 2 이상이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18년째 중국집을 운영 중이라는 A씨는 "올해 4월부터 매달 매출이 1500만~2000만원 정도 확 줄었다"며 "나도 가게를 닫을까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식당에는 홀에는 손님 몇 명이 흩어져 있었고,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보다 배달 포장 주문이 더 많았다. 이곳 점장 B씨는 "안그래도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배달이 좀 들어오는 편이라 그걸로 버티는거지 테이블 장사로만 했으면 힘들었을거 같다"고 말했다.
    ◇버거킹·맥도날드 '풀좌석'…저가 커피 4대장 북적

    하지만 길만 건너면 풍경이 달라진다. 연세대학교 정문 앞 버거킹과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는 평일 오후에도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점심시간 직전인 오후 12시 반 무렵, 맥도날드 매장은 2층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좌석이 꽉 차 있었고, 매장안에는 햄버거를 들고 자기가 비워지길 기다리는 대기인원이 가득했다. 학생들이 가방을 옆에 둔 채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빠른 회전율로 자리를 비워주고 있었다.

    바로 옆 버거킹 역시 계산대 앞에 줄이 이어지고, 배달 주문 포장 박스가 끊임없이 쌓였다. 빽다방과 컴포즈커피 등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코가 올해 상반기 캠퍼스 인증 이용자를 분석한 결과, 대학생들이 가장 자주 찾는 브랜드는 메가MGC·매머드·빽다방·컴포즈커피 등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였다. 또한 맘스터치·KFC 같은 가성비 중심 패스트푸드, 아성다이소·세븐일레븐·이마트24·스토리웨이 등 생활형 매장 이용률도 높았다.

    패스트푸드점은 사실상 '제2의 학식'이 됐다. 버거킹 '올데이킹', 롯데리아 '리아런치', 맥도날드 '맥런치' 등 5000~7000원대 점심 세트가 대학생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버거킹은 5500~6500원, 롯데리아 5400~9100원, 맥도날드는 5900~7900원(한정 메뉴 제외)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맥도날드는 매출 1조2502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 117억 원으로 8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학생들이 ‘맛·가성비·안정감’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곳으로 몰린 결과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피자·햄버거·샌드위치 등 '유사음식점업'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87.63으로 전체 외식 평균(70.76)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외식 전 분야 중에선 '기관 구내식당업(학식 포함, 95.4)' 다음으로 높다. 예전처럼 '대학가 유동인구 효과'만으로는 다양한 메뉴가 고르게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방증이다.
    ◇학생들 사이 퍼지는 '선택적 소비' 공식

    알바몬이 지난해 4월에 대학생 11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월평균 용돈은 약 51만 원이다. 이 중 식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전체의 63.8%에 달했다.

    높은 물가로 점심 한 끼가 만 원을 훌쩍 넘는 현실 속에서, 대학생들은 기본적인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용돈의 상당 부분을 쓰며 진짜 가치 있는 소비엔 아낌없이, 그렇지 않은 곳엔 최소 지출로 대응하는 '선택적 소비' 성향을 보이고 있다.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조장혁 씨는 "과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학관에서 많이 먹는다. 학관이 싸다. 밖에서 만 원 쓸 거면 안에서는 5000원이면 된다"며 "그날 뭔가를 꼭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애매하면 가성비 좋은 학식을 먹는다"고 말했다.

    경영학과 최모 씨는 "시험기간에는 학식 위주로 먹고, 평상시에 먹을 때는 7000원~8000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9000원 이상인 곳이 많아서 차라리 진짜 뭔가 먹고 싶은 날을 위해 아낀다는 마음으로 반은 학식을 먹고 반은 밖에서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수학과 장지연 씨는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1만5000원까지 지불 가능하고, 마라탕을 정말 좋아하는데 만 원~1만2000원까지 지불하는 것 같다"며 "근데 주변에는 저가형 커피나 저렴한 밥집 위주로 가성비 있는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본인이 추구하는 소비 패턴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다양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제학과에 다니는 이원영 씨는 "주변에서 식사를 한다고 치면 보통 만 원 이내의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대학원생 윤서준 씨는 "보통 정문에서 식사를 보통 8000원 선에서 해결하는 것 같다. 특히 햄버거나 패스트푸트의 경우 이 가격선에서 해결이 되기 때문에 그런 걸 주로 먹는다"고 말했다.
    ◇신촌 골목, '3중고' 버티지 못한 폐업 도미노

    신촌 골목의 소형 자영업자들은 임대료·식자재값·인건비 3중고를 버티지 못하고 연쇄 폐업을 고민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신촌·이대 상권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4년 2분기 18.6%로 서울 평균(6.5%)의 세 배다.

    신촌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젠 권리금이 아예 없다. 2~3년째 빈 상가도 많고, 임대료를 내리지 않으니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다"고 전했다. "진짜 너무 먹고싶은 거 아니면 안 나간다"는 학생들의 한마디가 골목 매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비 등 한정된 금액 안에서 최대한 가치 있는 소비를 하려 한다"며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철저히 줄이되,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거나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 부분에는 과감히 지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고물가 시대에 이들이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건 결국 '자기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최대한의 소비"라며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군중의 흐름을 따르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소비 신념과 상징을 만들어내며 차별화를 추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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