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컬처 열풍을 타고 한국으로 밀려드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처럼 지내고 싶은 기대를 품고 온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을 가서, 한국인들이 흔히 쓰는 물건을 산다. 국내 최고층 롯데월드타워와 초대형 쇼핑센터 롯데월드몰이 외국인의 발길을 끌어모으며 대표적 관광명소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쇼핑, 관광, 문화, 숙박을 한데 묶어내며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놓은 이 거대한 복합 단지는 외국인 친화적 상품과 서비스로 오프라인 유통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롯데타운 잠실 매출 3조원 넘어
26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방문객은 올 들어 9월까지 약 4500만 명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작년 기록한 5900만 명을 넘어 6000만 명 달성이 유력하다.매출도 2020년 약 3000억원에서 지난해 7000억원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백화점과 명품관, 쇼핑몰을 아우르는 ‘롯데타운 잠실’ 전체 매출은 2021년 1조7973억원에서 지난해 3조500억원으로 증가했다.
매출 증대의 핵심 동력은 외국인이다. 지난해 외국인 매출 비중이 2020년 대비 12배 이상 뛰었다. 롯데는 외국인을 ‘유인하는’ 브랜드 전략을 치밀하게 폈다. 해외 잡화·뷰티가 95%를 차지하던 롯데월드몰 지하층은 현재 K패션, K뷰티가 주역이다. 아더에러, 이미스, 마르디메크르디, 하고하우스, 디스이즈네버댓 등 20여 개 한국 브랜드가 대형 매장을 열었다.
쇼핑몰의 정체성이 ‘한국적인 스타일을 만나는 곳’으로 바뀌자 외국인들이 반응했다. 이제 외국인 매출 상위 브랜드는 해외 유명 제품이 아니다.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마르디메크르디, 이미스, 하고하우스 등 ‘K라벨’이 매출을 선도하고 있다. 평일에도 외국인들이 긴 줄을 설 정도다.
레스토랑, 카페 등 식음(F&B) 매장도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요인이다. 고든램지 버거 아시아 1호점, 교토 퍼펙트 말차 글로벌 1호점, 두바이 디저트 바틸 동아시아 1호점, 마루가메우동 한국 1호점 등 수많은 ‘힙한 매장 1호점’이 이곳에 들어섰다. 외국인 관광객 중 일부는 오로지 ‘먹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롯데월드몰에는 2021년 이후 신규 F&B 매장만 70여 개가 추가됐다. F&B 관련 매출은 최근 2년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롯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롯데월드몰이 대대적으로 바뀐 건 2021년의 일이다. 롯데월드타워를 소유한 롯데물산 대신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그룹 내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롯데쇼핑이 운영권을 넘겨받아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그해 롯데백화점 대표로 부임한 정준호 사장이 작업을 지휘했다. 애플스토어, 아더에러, 마르디메크르디, 이미스, 하고하우스 등 플래그십 매장을 핵심축으로 내세우고, Z세대와 알파세대의 ‘인증 욕구’를 자극하는 팝업 매장과 사진 명소를 곳곳에 들였다. 오프라인 유통의 해법은 가격 중심이 아니라 경험 중심으로, ‘상품 큐레이션’이 아니라 ‘시간 큐레이션’으로 해석한 데 따른 것이었다.롯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큰 힘이었다. 123층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는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가 됐다. 롯데월드가 운영하는 아쿠아리움과 어드벤처도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미쉐린 호텔 평가에서 국내 호텔 가운데 가장 높은 ‘2키’ 등급을 받은 시그니엘 서울은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기에 국내 정상급 뮤지션이 공연하는 롯데콘서트홀과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줄줄이 선보이는 롯데뮤지엄 등이 더해져 쇼핑과 문화, 숙박, 식음 등이 모두 한곳에서 가능해졌다. 외국인들은 과거 명동에서 쇼핑하고 북촌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 동선’ 일변도에서 벗어나 잠실에서 K웨이브를 즐기는 ‘몰입형 체류’로 소비 패턴을 확장했다. 경복궁을 단순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경복궁에 가더라도 한복을 입고 한국인과 사물놀이 공연을 함께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식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정 사장은 “K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잠실은 한국다움을 가장 현대적으로 소비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