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에 부침을 겪던 회사가 새 투자처로 활로를 뚫기 위해 부트캠프에 참여했다"며 "지원금을 따로 받진 않고 성실히 프리뷰 영상 제작을 끝마쳤다"고 했다.
◇5회 지원금 받고 ‘먹튀’
에코픽처스는 정부의 사후 관리 체계가 미흡해 완성작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지 못한 한 예다. 정부 지원만 받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은 회사가 수두룩해서다. 기존 지식재산권(IP)을 앞세워 수차례 정부 지원을 받고 작품을 완성하지 않은 모스테입스라는 곳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21년과 2022년 ‘아이언 드래곤’과 ‘미키티’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겠다는 사업계획서로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3년 이상 지난 올해까지 작품이 지연되고 있다.윈드팜이란 회사도 마찬가지다. 윈드팜은 2021년 ‘마린봇 카디아’라는 작품을 내세워 간접 지원을 받았지만 최종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 같은 해 정부의 간접 지원을 받은 스튜디오진도 ‘지니어스 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미리보기 영상만 내놓고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이듬해 제작 지원을 받은 엑스톰 역시 ‘청춘 블라썸’이란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썼지만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크리티브는 2020년부터 네 차례 정부 지원을 받고 완성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연필과지우개란 업체도 다섯 차례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단 한 편의 애니메이션도 완성하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사업을 접고 다른 업종으로 바꾼 회사도 많다. 애니메이션 부트캠프를 마친 오디에스와 아이코닉무브먼트는 애니메이션 대신 각각 다문화교육과 전시광고 사업을 하고 있다.
◇허술한 정부 사후관리
업체들은 시장 상황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추가 투자자를 찾지 못하거나 유통 채널을 확보하지 못해 중도 포기했다는 설명이다. 처음부터 정부가 제작 능력이 없는 업체를 걸러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정부는 사후관리에 손을 놓은 채 매년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금을 늘리고 있다. 2020년 228억원이던 캐릭터·애니메이션 지원 예산은 2023년에 317억원으로 40%가량 늘었다. 지난해 352억원으로 11% 증가한 뒤 올해도 18억원 증액된 370억원이 편성됐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 수도 2020년 77편에서 2023년 94편으로 급증했다.
지원금과 지원 대상은 늘었지만 최종 완성된 애니메이션은 줄고 있다. 2020년 정부 예산을 받아 제작된 애니메이션 수는 42편이었지만 2023년엔 33편으로 감소했다.
인기 IP를 토대로 흥행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스튜디오애니멀이란 업체가 제작한 ‘매지컬 팡’과 ‘애니멀 스쿨’ ‘개판멜로디’ 등이 대표작으로 분류된다. 이 회사는 현재 상영 중인 ‘달려라 하니 극장판’의 공동 제작 업체로도 참여했다. 아툰즈가 두 차례 지원받아 제작한 ‘안녕 자두야’ 극장판도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흥행작은 극장 관람객 50만 명을 넘긴 ‘사랑의 하츄핑’(2024)과 ‘퇴마록’(2025) 정도다. 각각 동명의 TV 애니메이션과 소설이 원작인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IP를 앞세워 성공한 애니메이션은 한 건도 없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유통된 작품도 ‘달님이’ ‘마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등으로 10여 개에 그친다.
정부 지원금을 받은 한 애니메이션 회사 대표는 “민간 투자가 얼어붙은 국내 애니메이션산업 특성상 정부 예산에 기대어 연명하는 기업이 대다수”라며 “적자를 면하면 다행일 정도로 업황이 나쁘다 보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남의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