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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 설립 29년만에 빅5 우뚝…두자릿수 성장세 굳혔다 [로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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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 설립 29년만에 빅5 우뚝…두자릿수 성장세 굳혔다 [로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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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초반 주요 법무법인의 합병으로 본격화된 국내 대형 로펌 시대가 25년을 맞았습니다. 개인 송사 중심에서 기업자문, M&A, 경영권 분쟁, TMT 등 전문·세분화된 법률 서비스 체계로 전환되며, 대형 로펌들은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주요 로펌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의 역사를 조명하며, 대한민국 리걸 마켓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망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혼소송 대법원 파기환송,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가처분 판결 등 최근 굵직한 장면마다 법무법인 율촌의 이름이 있었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출발해 외연을 넓힌 율촌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2세대 로펌’ 중에서도 광장·태평양·세종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명실상부 한국 ‘빅5’ 로펌으로 자리 잡았다. 설립 30주년을 앞둔 율촌은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로펌’으로 꼽힌다.


    1997년 변호사 10명, 매출 26억원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변호사 540명 규모로 커졌고, 지난해 매출은 4080억원을 기록했다. 변호사 수는 약 50배, 매출은 156배 불어난 셈이다. 다만 이러한 고속 성장에도 김앤장법률사무소(1973년), 법무법인 광장(1977년) 등 ‘1세대 로펌’보다 연혁은 짧지만, 외형 확장만 좇는 성장과는 결이 달랐다는 평가다. 내부 시스템과 협업 문화를 정착시키며 내실을 다졌고,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빠르게 적응해 경쟁력을 갖췄다.
    1992년 ‘1인 사무소’에서…1997년 ‘율촌’ 출범
    율촌의 시작은 199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창록 변호사(사법연수원 6기)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신생 로펌들이 '스타 전관 영입' 으로 외형을 키우던 방식과 달리, 율촌의 출발은 비교적 조용했다.대형 로펌이라는 그림을 먼저 그렸다기보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한 명씩 모으며 조직의 형태를 갖춰나갔다.

    분기점은 1997년이었다. ‘조세법의 대가’로 불린 이창희 교수의 권유를 계기로 우 변호사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모아 합동 형태로 전환하기로 했다. 김앤장 출신 강희철 변호사(기업금융·11기), 한만수 변호사(조세·13기), 한봉희 변호사(금융·지식재산권·16기)가 합류했고, 윤세리 변호사(공정거래·국제조세·10기)와 정영철 변호사(M&A·기업자문·13기)가 가세하며 ‘전문화’의 골격을 갖췄다.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로 사무실을 옮기며 세를 키운 것도 이 무렵이다.


    초기 율촌의 성장축은 ‘조세’와 ‘공정거래’였다. 우 변호사는 법무법인 율촌 독립의 계기가 된 현대그룹 5개 계열사 법인세 부과처분취소 소송 등 대기업 조세 사건을 연이어 맡아 전부 승소를 이끌어내며 '조세의 율촌'이라는 인식을 굳혔다.

    윤세리 변호사가 이끈 공정거래·국제조세분야도 율촌의 주요 성장 축이었다. 윤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 뒤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글로벌 로펌 베이커앤맥킨지(Baker McKenzie)에서 실무를 쌓는 등 당시로선 드문 경력을 갖췄다.



    외환위기 속 ‘도약’…'TRS' 승소로 존재감 각인
    율촌의 첫 도약은 외환위기 국면과 맞물렸다. 대기업 구조조정과 파산, 분쟁 급증으로 법률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다. 위기는 신생 로펌에 부담이었지만, 율촌에는 역설적으로 기회가 됐다.

    율촌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대표 사례가 1998년 ‘총수익스와프(TRS)’ 관련 대형 국제소송이다. 율촌은 국내 대형 증권사를 대리해 세계적 투자은행과 맞붙은 사건에서 승소하며 단기간에 위상을 끌어올렸다. “율촌이 국제 무대에서 통한다”는 평가가 확산한 이후 강희철·한봉희 변호사 등이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금융사의 자문을 연달아 맡으며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분야에서도 주요 로펌으로 자리매김했다.
    송무 약점 보완...조세 분야는 '초격차'
    이 흐름은 2007년에도 이어졌다. 율촌이 조세 ‘자문’에 강하다는 평판을 ‘조세 송무’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법원 출신 인재 영입이었다. 앞서 윤용섭 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부장판사(10기) 영입으로 송무의 뼈대를 세우고, 2000년 3월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 조세 사건을 담당했던 소순무 전 부장판사(10기)의 합류로 조세소송 역량을 한층 끌어올린 데 이어, 2007년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조세팀장)을 지낸 강석훈 변호사(19기)가 가세했다.


    강 변호사 합류는 율촌의 조세 송무 전문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분기점으로 꼽힌다. 조세 사건은 1·2심의 사실관계 다툼만으로 끝나지 않고, 대법원 단계에서 법리 싸움으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조세팀장) 출신인 강 변호사는 쟁점별 판례 흐름을 정교하게 읽어내고 재판 과정에서 논리 설계를 고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도 ‘LG가(家) 상속세 소송’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조세 송무 분야에서 율촌의 ‘초격차’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룹 체제 계편, '폭풍 성장' 계기
    율촌의 ‘폭풍 성장’은 조직 재편과 함께 왔다. 업무가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지자, 팀 단위 조직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지자 성장의 병목을 그룹 체제로 풀어낸 것이다.


    2005년 조세그룹을 시작으로 송무그룹, 기업법무·금융(C&F)그룹이 확대·개편됐고, 2006년에는 지식재산권(IP)그룹이 발족했다. 2012년에는 공정거래그룹이 C&F그룹에서 분리되고, 2013년에는 부동산 관련 업무를 통합해 부동산건설그룹을 출범했다. 2015년 노동팀이 독립하면서 현재의 6개 그룹(조세·송무·C&F·IP·공정거래·부동산건설)과 1개 팀(노동팀) 체제가 완성됐다.
    율촌이 그룹 체제로 로펌을 재편해 나가던 시기, 존재감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사건이 있었다. ‘세기의 소송’으로 불린 2011년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에서 율촌은 삼성 측 일부 승소를 이끌어냈다. 전문 인력을 한데 묶어 시너지를 내는 그룹 체제의 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무대가 바로 이 사건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세와 공정거래 등 기존 강점 분야에 더해 지식재산권(IP) 역량까지 전면에 내세우면서, 율촌이 ‘특화 로펌’을 넘어 종합로펌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후 율촌은 LG디스플레이가 삼성디스플레이를 상대로 제기한 OLED 특허소송에서 삼성 측을 대리해 합의로 사건을 정리했고, 한미약품과 화이자 간 비아그라 상표 분쟁에서는 한미약품을 대리해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어내는 등 굵직한 성과를 이어갔다. 삼성-애플 특허전이 ‘IP 율촌’의 간판을 세웠다면, 후속 성과들은 그 간판이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이같은 그룹 재편과 이어진 승소는 즉각 매출로 이어졌다.삼성-애플 소송을 맡기 시작한 율촌의 매출은 2010년 950억원에서 2011년 1142억원으로 늘며 전년 대비 20.2% 성장했다. 2013년에는 2012년 1189억원에서 1477억원으로 뛰며 전년 대비 24.2%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이 시기를 율촌이 외형을 한 단계 키운 분기점으로 본다. 이후에는 매출 성장률 10% 안팎을 유지하며 2025년 4080억원까지 꾸준히 체급을 키웠다.
    후발 주자의 역발상…해외·신시장에서 ‘블루오션’ 선점
    성장의 배경에는 ‘블루오션’을 선점해 온 율촌의 외연 확장 전략도 한몫했다. 국내 로펌 간 수임 경쟁에 매몰되기보다는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따른 법률 자문 수요에 발맞춰 남들보다 한발 앞서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율촌은 2007년 베트남 호찌민에 첫 해외사무소를 연 뒤 2010년 하노이, 중국 베이징(이후 상하이로 이전), 2014년 미얀마 양곤, 2015년 러시아 모스크바, 2017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 진출해 5개국 6개 거점을 확보했다. 현지 변호사 채용과 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글로벌 대응 역량을 내실화했고, 러시아·중앙아시아 등 지역 특화 조직은 제재 변화에 따른 리스크 대응 자문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 사무소를 거점으로 운영되는 러시아팀은 국내 로펌 가운데서도 “대체불가 카드”로 꼽힌다. 제재 및 관세 및 분쟁이 한꺼번에 얽히는 러시아 비즈니스 특성상 현지 네트워크와 한국 본사의 전문그룹이 동시에 움직이는 ‘복합전’이 필요한데 율촌이 이를 가장 먼저 체계화했다는 평가다. 러시아팀은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업무를 이끄는 이화준 외국변호사가 중심을 잡고 있으며 모스크바 사무소 대표도 맡고 있다. 우재형 변호사(39기). 정규진 외국변호사 조은진 외국변호사 등이 실무를 뒷받침하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현지 변호사와의 협업 라인도 고정해 ‘러시아 특화’ 사건을 상시 대응 체제로 돌린 것이 강점이다.

    성과도 가시적이다. 최근 율촌은 한국 의료기기 업체 오스템임플란트를 대리해 러시아 중앙관세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부당하게 부과된 과징금 126억원 전액과 이자 33억원까지 반환받았다.

    이처럼 율촌은 성장 국면마다 ‘새 시장’을 발굴해 외연을 키우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 지난해 출범한 방산·항공우주 분야도 같은 맥락이다. 방산·항공우주팀은 정원 변호사(30기)를 중심으로 은성욱 변호사(26기), 손금주 변호사(30기), 유종권 변호사(36기) 등이 포진해 있다. 기술 수출입 통제, 국가계약 및 방위사업 규정, 영업비밀·보안, 국제거래 분쟁 대응까지 ‘원스톱’으로 다루는 체계를 갖췄다.

    개인보다 강한 조직...율촌의 '대체불가 경쟁력'
    다만 이 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배경으로는 율촌의 ‘진짜 저력’인 조직력이 꼽힌다. 법조계에선 “율촌은 개인기가 아니라 조직력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많다. ‘조직을 앞서는 개인이 없다’는 문장이 율촌을 설명하는 정석처럼 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율촌 내부에선 변호사 평가도 개별 사건 수임 실적이나 개인의 스타성보다 팀플레이 역량을 더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건을 따내는 힘보다 조직에 녹아드는 태도, 협업 과정에서의 조율 능력, 부서 간 연결을 만들어내는 스킬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처럼 끈끈한 조직문화는 율촌의 ‘시그니처’로 꼽힌다. 특정 스타 변호사 한 명이 회사를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그룹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움직이는 체계가 성장의 바탕이 됐고, 타 로펌이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경쟁력으로 평가받는다.

    이 문화는 출범 초기 도입한 영미식 파트너십과 맞물려 공고해졌다는 분석이다. 율촌은 배당 결정 공식을 정비하면서 사건 수임 기여도만 따지지 않고 파트너의 경력과 업무 시간 비중까지 반영해 협업을 유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우창록 변호사는 “수임 중심으로 수입과 지출을 각자 계산하면 자기 일만 하게 된다”며 “모두가 내 일처럼 하려면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조직을 굴리는 '시스템’도 율촌의 강점으로 꼽힌다. 우 변호사는 1992년 개인 사무소 시절부터 경영·관리 효율성을 고려해 경영정보시스템(MIS) 기반의 송무 업무 전산화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는 법원의 전산시스템보다 앞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사 문서 양식 표준화 역시 같은 흐름이다. 비서와 스태프의 문서 작업을 ‘전문 영역’으로 고도화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이 같은 방식은 국내 로펌들이 벤치마킹해 도입하는 기준이 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조직 내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수집·정리·저장·공유하는 지식자산관리(KM) 시스템도 율촌의 핵심 자산이다. 이렇게 축적한 지식자산은 AI 활용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율촌은 지난해 12월부터 폐쇄형 AI 시스템을 본격 가동하고, 법률 특화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적용해 판례·법령·자문·송무 자료를 신속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강해지는 방식으로 성장해온 율촌의 방향성이 AI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 분야에서도 율촌은 일찍부터 길을 닦았다. 2007년 국내 로펌 최초로 사내 연수기관 ‘율촌아카데미’를 설립해 연차별·언어별·전문 분야별 교육을 체계화했다. 영상 기반 온라인 아카데미를 통해 외부 법무 조직의 역량 강화까지 지원하고, 외국인 변호사를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따뜻한 법으로’…공익법인 ‘온율’로 확장한 가치
    율촌은 ‘따뜻한 법으로’라는 철학 아래 외형 성장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와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는 방침도 강조한다. 율촌 장학금 수여, 학술상 제정·후원, ‘나눔 마라톤’ 등 공익 사업을 꾸준히 펼쳐 왔고, 2008년부터는 공익 활동을 체계화해 공익기관·단체와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자문 및 상담, 공익법센터 ‘어필(APIL)’ 소속 변호사 연봉 지원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이 같은 활동은 2014년 3월 3일 공익 전담 법인 ‘온율’ 출범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 율촌 변호사들은 정신장애인 지원 공공후견사업, 공익단체 무료 지원, 북한이탈주민·여성·아동·청소년을 위한 공익 법률 지원 등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에는 ‘가치성장위원회’를 발족하고 이인용 전 삼성전자 사장을 위원장 겸 온율 공동이사장으로 영입해 사회적 가치 실현을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세대교체 후 남은 숙제는...
    율촌은 2019년 3인 공동대표 체제를 거쳐 2025년 강석훈 변호사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각 그룹에 1970년대생 파트너 변호사를 전면 배치하는 등 세대교체를 추진해 왔다. 내부에선 큰 갈등 없이 리더십 바통 터치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외형 성장을 넘어 ‘조직의 결’을 어떻게 정교하게 맞출지가 다음 과제로 꼽힌다.

    사무공간 문제도 변수다. 국내 최고 수준의 임대료로 알려진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 타워 임대차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서다. 율촌은 2017년 파르나스 타워에 입주했다. 당시 체결한 10년 계약은 전반 5년 임대료를 동결하고, 후반 5년은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인상을 허용하는 구조여서 비용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공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재계약 때도 같은 조건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파트너들 사이에서도 높은 임대료 부담을 이유로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과, 상징성과 업무 효율을 고려해 잔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후발 주자로 출발한 율촌은 ‘퍼스트 프런티어’ 원칙을 내세우며 남들보다 먼저 읽고 한 발 앞서가는 전략을 강조해 왔다. 1997년 매출 26억원에서 지난해 4080억원으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율촌이 조세·송무·지식재산권(IP)·글로벌·AI라는 다층적 축을 앞세워 다음 30년의 서사를 어떻게 써 내려갈지, 로펌업계의 시선이 모인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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